허영의 시장 2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이제 우리의 인형극이 끝났으니 꼭두각시 인형들을 집어넣고 상자의 뚜껑을 덮자구나."라며 윌리엄 M. 새커리는 《허영의 시장》을 끝맺었다. 1권과 2권을 합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가진 욕심과 허영을 뽐냈고, 그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했다.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경제권을 쥐고 흔들고, 전쟁을 피해 비싼 돈을 지불하며 도망을 가고, 또 망해버린 사업으로 딸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던 인물들은 결국 죽음으로 이 연극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녀의 썩은 양심이 이번만은 정말 순수함을 지켰던 것일까? 그녀의 모든 거짓말과 계략, 이기주의와 음모, 기지와 영리함이 결국 이렇게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 p. 363

인물 소개가 주를 이루었던 《허영의 시장 1》과는 달리 《허영의 시장 2》에서는 본격적으로 인물들의 욕심과 허영을 보여준다. 로던과 비밀리에 결혼해 야반도주를 했던 레베카는 특유의 성격으로 사교계를 휩쓸며 남심을 사로잡고 많은 여성들의 질투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높은 콧대를 유지하며 자신의 생활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가 만약 그 시대의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한자리 차지하고도 남았을 만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한다. 그렇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영국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1817년과 1818년의 그 행복했던 시기 동안 영국인들의 부와 명예에 대한 존경은 대단한 것이었다. 듣자 하니 그때의 영국인들은 아직 현재의 그들을 특징 짓는 집요하고도 인색한 흥정의 기술 같은 것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유럽의 주요 도시들 역시 아직 악랄한 영국 사기꾼들의 공격을 받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에서도 영국의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상표처럼 달고 다니는 거만한 자세로 여관 주인들을 등쳐먹고 믿을 수 없는 은행에서 발행된 허위 수표들을 남발하고 마차 제작자들에게는 마차를, 세공인들에게는 장신구를 만들게 한 후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버리고 카드놀이로 순진한 여행객들의 돈을 뜯고 심지어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 가는 등의 만행을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다. / p. 63

새커리는 이런 레베카의 모습을 통해 당시 영국인들의 허영 넘치던 모습을 비판한다. 돈이 곧 명예라고 생각하고 돈을 좇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아첨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에 빗대어 영국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인물을 향한 논평을 하는 척 《허영의 시장》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아주 냉정한 어조로.

《허영의 시장 2》에서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등장한다. 로맨스. 당시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임을 감안하면, 새커리 입장에서는 이런 소재를 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웃기게도 독자들이 기대했던 로맨스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저 한 남자의 애절한 짝사랑만이 남아있을 뿐. 남편 조지가 전사한 뒤, 아들을 낳아 홀로 키우는 아멜리아가 바로 그 짝사랑의 대상이다. 작가가 묘사하기에도 청순하고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아멜리아를 늘 옆에서 지켜보는 도빈의 사랑은 가슴 아프다.

그건 핑계에 불과해요, 아멜리아. 그렇지 않다면 난 지난 십오 년 간 아무 보람 없이 당신을 지켜보고 사랑해온 걸 겁니다. 나도 그동안 당신의 마음을 읽고 당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의 애정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충실하게 기억에 매달리며 몽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바쳐온 마음은 소중히 여기지 않아요. 당신보다 너그러운 여자에게 제가 받을 수도 있었을 애정을 느낄 줄도 모르고요. 네, 당신은 내가 그동안 바쳐온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 p. 608

작가는 인물들이 각자의 허영을 추구하도록 만들고는 그들을 비판을 위한 대상으로 삼았던 걸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허영의 시장》 속 인물들이 말하는 스타일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레베카는 남편을 멍청한 양반, 작은 괴물 등으로 불러대기도 하며, 자신의 행동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말투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뿐더러 읽는 독자들조차도 그리 좋게 느끼지는 못한다. 읽는 동안 그런 스타일로 말하는 인물 주변에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충격적이었던 《허영의 시장》. 원하는 대로 시원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가진 욕심과 그 본성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아! 헛되고도 헛되도다! 우리 중 누가 대체 이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한들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이 가진 허영의 끝은 어디일까. 부디 그 시장의 중간에서 헤매지 않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