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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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서로 미안하지?

나한테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누구지?

아무도 내게 사과를 안 해. 누군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요즘 분해서 자꾸 눈물이 나.




영화 〈기생충〉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가장 먼저 한숨을 쉬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착잡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카메라 앵글은 수직적인 계층 사회를 그려내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올라가지 못할 계단에 선 우리들은 위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높이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비가 몰아치자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다시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내려오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걸까?

〈82년생 김지영〉, 〈그녀 이름은〉을 통해 여성 연대를 이야기한 조남주 작가는 《사하맨션》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낸다. 비참한 생의 종착지이자 추방되고 낙오된 사람들을 위해 허락된 마지막 공동체, 그곳에서 조남주 작가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결코 소설 속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타운'이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장 이상한 도시국가. 밖에 있는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려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다. / p. 33

원래는 어촌이었던 마을을 한 기업이 인수하게 된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그곳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급자족으로 살게 된다.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던 팔순의 회장은 "타운은 여러분의 것입니다."라는 말로 공동총리제를 도입한다. 그리고 '타운'이라는 이름의 작은 국가가 형성된다. 자연스럽게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이 필요한 전문 지식, 기술을 가진 주민 L층과 주민 자격을 갖추진 못했지만 2년에 한 번씩 체류 기한을 부여받은 L2층, 그리고 주민권과 체류권도 갖지 못한 마땅한 이름이 없는 '사하'로 구분되었다.







가스와 전기, 수도까지 자급자족으로 살아야 하는 사하맨션 사람들은 소장을 통해 일을 알선 받으며 근처 공장에서 일을 한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들이 그들에겐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된다. 조남주 작가는 사하맨션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하나씩 그려낸다. 그들이 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하며 사하맨션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 비슷하지 않은 듯 비슷한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아간다. 일을 하러 나간 사람들을 대신해 맨션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끼니를 챙겨준다.

사하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라에게 세상은 딱 그 크기, 그 만큼의 빛과 질감, 그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런데 요즘 사라에게 너머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많은 일들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 사라는 왼손을 들어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을 닦았다. / p. 112

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운에게 위협처럼 느껴졌던 '나비 폭동'이라 불렸던 그 움직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꽃님이 할머니의 텃밭에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움트듯이 사하맨션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하맨션》은 그들의 변화가 가져온 세상을 그려내지 않는다.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 딱 거기까지 보여준다. 이후의 상황들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위를 동경했지만, 결코 위로 갈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했다. 이곳에도 사람이 있음을. 더 내려갈 수도 없는 그곳에도 사람이 있음을. 자신이 바란 적도 없고,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이 삶의 굴레에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고 살고 싶다고.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것. 《사하맨션》은 그 인식의 첫 날갯짓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끌어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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