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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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씩 내딛는다.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작고 따뜻한 울타리에서 걸어 나온다.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슬픔들이 나를 맞이한다. 그 속에서 방황하며 수없이 부서짐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내가 다시 돌아갈 작고 따뜻한 울타리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울타리가 부서지는 날, 상실감을 맛보겠지만 그럼에도 그 울타리의 흔적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식에게 어머니란 그런 존재일 것이다.

도쿄타워는 고레헤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의 주연 배우인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작사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시작으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잔잔하면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 속에서 모성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상경했었고 결국 떨려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나왔다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나,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런 환상을 품은 일이 없는데도 도쿄까지 따라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 타워 중턱에 영면한 내 어머니의 조그만 이야기이다. / p. 6

 


 

세 살 이후 나사야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간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들이 흠 잡히지 않도록 그를 가장 잘나게 키우고자 했다. 늘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을 먹이며 항상 깨끗하고 단정하는 것들로 그를 채워나갔다. 당신이 옷 한 벌을 사고자 하면 언제나 가격 할인이 들어간 상태여야 했다.

세상을 동경하던 소년은 어머니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도쿄로 상경하기로 마음먹는다. 모두의 동경이 모인 이 고독하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소년은 치이고 방황하며 갈 길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의 뒤에 서 있을 뿐이다.

 


 

예전에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살았는지, 무엇에 눈물을 흘렸는지도 잊어버린 채, 소중했을 터인 그것들을 그 방종한 자유 속에서 헛헛한 웃음과 함께 용해되어 버린다. 진흙탕 속의 자유에는 도덕도 법률도 이미 자제력을 잃고, 오히려 그것을 범하는 것밖에는 남겨진 자유가 없다. / p.231

 


 

도쿄타워에는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가까이에서 듣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한 편 어딘가가 따뜻해지고 뭉클해진다. 마지막 장까지 그 여운은 계속된다. 꿈꾸기 위해 도시로 상경한 청년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와 닿으니까.

꿈과 희망으로 가득할 거라 믿었던 도시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것은 차가운 현실이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살아가는 청년의 휘청거림은 누구나 고민했을 법한 시간으로 그려진다. 밤에도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웅장하게 서 있는 도쿄타워는 그 현실과 대조된다. 모두들 자신만의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이 현실을 헤쳐 나간다. 그리고 릴리 프랭키는 자신의 도쿄타워가 어머니였음을 이야기한다.

 


 

엄니는 엄니의 세계에서, 엄니의 의식의 우주에서 그곳에 몇 번이나 올라갔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그곳에. / p. 415

 


 

릴리 프랭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도쿄타워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과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었던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을 보여준다. 나 역시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내게도 든든한 도쿄타워가 있기 때문이리라. 늘 감사하며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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