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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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도덕 시간은 늘 토론의 열기로 가득 찼다. 찬성과 반대. 두 개의 선택지에서 한 가지 답만을 얻으려 했다. 10년이 지나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두 개의 선택지에서 한 가지 답만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과 관련 있는 문제에는 더더욱.

《굿바이, 헤이세이》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인 히토나리(平成)는 이름 덕분에 언론에 거론되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히토나리는 감정이 메마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인 아이(愛)에게 문득 헤이세이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안락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 끝난 인간이라고 생각해.



히토나리의 고백에 아이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한다. 히토나리를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그와 함께 안락사 현장을 견학하기 시작한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히토나리와 아이를 통해 ‘안락사’라는 뜨거운 감자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안락사가 자살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자살과 다르다고 가정하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할까? 선택된 죽음 후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론, 오래 사는 게 선이라고 여겨져 온 사회에서 ‘죽고 싶다’고 바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은, 자살이나 안락사를 실제로 하는가 안 하는가와는 별개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한다. 좀 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자살이나 안락사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라고 하는 사람의 비율은 25퍼센트에 달한다고 하며, 특히 20대에서는 그 수치가 무려 45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수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죽음에 이끌린다는 게 기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47)



 



중학생이었던 나는 ‘안락사’를 개인적인 일로 생각했다. 삶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듯이, 죽음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훗날 나 역시 병으로 고통 받는다면,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선택된 죽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안락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선택할 수 있다면, 늙어서 아프면 안락사 할 거야.” 물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개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막상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지겠다고? 사랑하는 히토나리에게서 그런 고백을 들은 아이의 마음이 더 와 닿았다. 히토나리를 설득하겠다는 아이의 행동도 이해됐다. 그래서였는지 《굿바이, 헤이세이》를 읽는 동안 아이가 히토나리를 설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선택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게 아니야. 히토나리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조금 신경이 곤두서 있어. 모처럼의 일요일 밤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느닷없이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었고, 그 이유가 아무튼 자기 멋대로야. 그래도 적지 않은 날을 같이 살아왔는데 같이 산 사람에 대한 배려는 요만큼도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너처럼 총명한 사람이 어째서 그런 허점투성이의 논리를 내세워 죽겠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나온 김에 말하자면, 나, 오자와 겐지의 신곡, 싫어하지 않아. 그러니까 피망이랑 새송이버섯 정도는 먹어 둬.” (p. 28)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나약한 나는 여전히 그 죽음이 두렵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면 할수록 죽음이 무섭다. 죽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 남을 공허함과 슬픔이 무섭다. 그래서 히토나리의 선택을, 엄마의 생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기적이게 보일 수도 있다. 오지랖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선택을 존중하지 못하다니, 그런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개인적인 선택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지 아이(愛), 우리 인간은 아직 전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요즘 들어, 나는 많은 죽음에 입회해 왔지만, 사람은 이렇게나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큰 타격을 입는 존재로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어. 불의의 사고라면 이해하겠는데, 수명이 다해 죽거나 본인이 결정한 게 분명한 안락사에 대해서조차, 그 죽음에 대해 사람은 슬퍼하고 괴로워해.”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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