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시장 1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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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밥을 씹으며 TV를 본다. 엄마가 자주 시청하는 일일 드라마에는 늘 같은 대사가 흘러나온다.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빼앗아주겠어! 그건 원래 내거라고!” 돈과 명예를 가져도 그들의 욕심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늘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가진 거라곤 밝은 성격 하나인 주인공들에게서 무엇이든 빼앗으려 한다. 항상 악에 받쳐있고 분노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여느 드라마처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걸 알면서도, 새로운 드라마 속 악인들은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

200년 전에도 그랬다.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의 욕망이 가득했던 19세기의 영국. 근대화로 인해 상공업이 발달하고 중산계급이 눈에 띄게 성장하자 사람들은 욕심과 허영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윌리엄 M. 새커리는 이를 소설 속에 담아낸다. 《허영의 시장》은 부와 명예, 사랑과 결혼, 지위, 쾌락 등 각자가 가진 욕심과 허영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욕심과 허영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하게 될까?

허영의 시장, 아 허영의 시장이여! 여기 철자법도 제대로 모르고 글 읽기를 즐기지도 않으며 시골뜨기다운 습관과 잔재주를 지니고, 삶의 목적이라고는 온갖 종류의 사기 행각뿐이며 한평생 가진 취향이나 감정, 도락 역시 비천하고 야비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지위와 명예, 다소간의 권세를 지니고 한 지역의 유지이자 국가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p. 153)

독특하게도 《허영의 시장》은 줄거리 전개의 주인공이 없다. ‘영웅 없는 소설’이라는 부제의 단행본으로 출간될 정도로 《허영의 시장》은 특별한 주인공 없이 모든 인물들의 행적을 낱낱이 따라간다. 그나마 가난한 고아 레베카와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자란 아멜리아의 대조적인 삶에 집중한다.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세속적인 가치관들을 각각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새커리는 이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으며, 속물적인 존재인지 파헤친다.

부유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크롤리 고모님 역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건 모두 받아내되 쓸모가 없다고 생각될 때면 망설임 없이 그들을 내치곤 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애당초 감사하는 마음을 타고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배우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하고 신분 낮은 사람들의 봉사를 당연한 의무로서 생각한다. (p. 242)

《허영의 시장1》은 인물 소개로 가득하다. 새커리는 인물들을 소개하며 서슴없이 그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한다. 그는 소설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소설 밖에서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소설 안으로 뛰어 들어 그 행동에 대해 꾸짖으며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 독특한 전개 방식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익숙해지니 새커리의 존재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느껴진다.

아, 아름다운 젊은 독자들이여,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라. 세속적이고, 이기적이고, 은혜도 감사도 모르는 늙은 무신론자 여인이 가발도 쓰지 않은 채 고통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신음하고 있는 모양새를. 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부디 여러분도 늙기 전에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p. 237)

《허영의 시장1》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허영을 추구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이 연극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아! 헛되고도 헛되도다! 우리 중 누가 대체 이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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