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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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가족은 하나의 공동체로 여겨졌다. 가족 구성원들을 개인보다는 전체로 바라보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등등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엮어보는 시선들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즐거움도, 슬픔도, 모든 것을 함께 짊어져야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어디까지 짊어져야 할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따뜻한 감동을 주었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지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거운 주제를 던져준다. ‘살인자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외면 받아야 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와 츠요시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한다.

 

나는 이제부터 혼자다. 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는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여러 해 뒤의 일이다. 아니 몇 십 년 뒤가 될지도 모른다. (p. 47)

 

츠요시는 동생 나오키의 대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삿짐을 날랐던 집을 털기로 한다. 돈과 더불어 동생이 좋아하는 톈진 군밤을 챙겨 둔 츠요시는 인기척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범행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이내 그는 검거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졸지에 살인자의 동생이 되어 버린 나오키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생활비를 벌어가며 고등학교 졸업을 마쳤지만,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 때문에 계속해서 이사를 다니게 된다. 형의 비밀을 숨기려고 하지만 이내 사실일 밝혀지면서 꿈도,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주홍 글씨는 나오키를 따라다니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항상 도망 다니며 생활했기 때문에 이제 도망치는 건 싫어. 다른 사람이 도망 다니는 것도 싫어. 그래서 너도 도망치지 않았으면 했어. 그뿐이야. (p. 382)

 

매달 배달되는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는 나오키를 괴롭힌다. 배달된 편지는 나오키에게 사회에서 껄끄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를 통해 살인자의 가족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가족이 느낀 슬픔에 쉽게 공감하며, 반대로 살인자의 가족은 하나로 묶어 비난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츠요시의 잘못이었음에도 나오키 역시 살인이라는 죄 앞에 함께 서며 사람들에게 차별 받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지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제시하지만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 뿐 답을 주지는 않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편지편지속에서는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인연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것에 비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문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만약 나의 가족이 살인자라면, 그 무게를 함께 이겨내야 하는가? 혹은 사회는 그것을 포용해줄 수 있는가?

 

나오키는 온몸이 허탈감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게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란 걸까? 어른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어떤 때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떤 때는 교묘하게 차별을 조장한다. 그런 자기모순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까?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 182)

 

살인자의 가족에게 행복은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이 더 많은 고통 받기를 원하며, 차별하고 외면한다. 살인자의 범죄에 대해서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주홍 글씨를 가지고 살아갈 그들이 행복할 권리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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