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 - 상 마지막 의사 시리즈
니노미야 아츠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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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렸다. 날씨가 제법 흐리더니 이내 땅을 투둑투둑 적시기 시작했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던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머리와 어깨에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그리고 문득 카페에서 읽은 책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짜증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낱개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물방울이 군집을 이루어 벽처럼 다가왔다. 가녀리게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부근 일대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기척이 났다. 산소와 수소가 체모 사이로 파고들어 피부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상권p. 8)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의 후속작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는 흐린 날씨에 조금은 우울한 그 감정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긴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첫 시작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하루만에 상,하권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니노미야 아츠토는 굉장한 흡입력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환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며 치료 대신 죽음을 종용하기도 하는 의사 키리코와 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열정적인 의사 후쿠하라는 두 사람을 이어주던 유일한 친구의 죽음 이후 각자의 길을 걷는다. 시치주지 병원에서 나온 키리코는 '키리코 의원'이라는 낡고 허름한 의원을 세운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한 연인이 각각 병원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병에 걸렸음에도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삶의 의지를 태우기도 하는 반면, 방향을 잃고 절망하며 끝없이 추락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본래 투쟁이야. 싸울 의지도 없이 단지 주어진 삶을 멍청하게, 혹은 도망치면서 살아가는 녀석은 살아갈 가치가 없어. (상권 p.91)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는 불치병이라고 여겨지는 에이즈 환자, 말기암 환자와 치매 환자의 심리를 묘사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환자들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싶은지, 그 시간을 온전히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소중한 꿈이 있는지 니노미야 아츠토는 키리코와 후쿠하라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묻는다.


인생은 병에 걸리기 전부터 시작돼 있었잖아요. 그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 그러기 위해 살아왔을 거잖아요? 제가 볼 때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고 싶은 일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에요. (상권 p. 136)


짜증스럽게 내리던 비는 세 사람의 죽음을 끝으로 멎어든다. 삶을 향한 열정을 중요하게 여기든, 치료 대신 죽음을 종용하든, 두 의사는 환자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이 살리고자 한 생명이 더욱 존엄하게 느껴진다. 비가 그친 후에도 삶과 죽음, 그 기로에 놓이는 순간은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내릴 비에 힘들고 지치지 않도록. 니노미야 아츠토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비는 내린다. 어딘가에서 내리고 어딘가에서 그치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의 생명과 마찬가지다. 키리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리쬐는 빛을 보았다. 작은 물 입자가 여전히 대기 속에서 춤추며 저마다 자유로운 파장의 광선을 흩뿌리고 있었다. (p.226)


모든 생명엔 희망이 있음을, 봄비와 더불어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를 통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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