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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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과 죽음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죽음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물론 일상에서 죽음의 존재를 늘 확인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때보다 가장 아프고 처절한 슬픔을 맛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말이다.

치넨 미키토는 자신의 저서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를 통해 죽음으로 하여금 삶이 얼마나 긍정적인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머무르는 호스피스 병원의 실습생 소마의 시각을 통해 환자들의 삶을 바라본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환자 유카리와의 관계를 통해 살아있는 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한다.

 

종종 있잖아. 삶이 얼마 안 남은 환자가 죽을 때까지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드는 거.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와 같아. 옛날에 들은 적 있어. 꿈을 그린 그림 위에서 자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p. 34)

 

언제나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하야마곶 병원에서 실습을 하게 된 소마는 그곳에서 머릿속에 폭탄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카리를 만나게 된다. 상속 받은 유산으로 바깥세상으로 쉽게 나가지 못하는 유카리는 자신이 머무르는 병원을 다이아몬드 새장이라고 지칭하며 소마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 병원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유카리는 소마에게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을 내주며 그와 점점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진다.

어릴 적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도망 가버린 트라우마가 있는 소마는 자신에게 책상을 내어준 유카리에게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마음을 나누지만, 실습이 끝난 소마는 이내 하야마곶 병원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헤어진 것을 아쉬워하던 중, 소마는 유카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만큼은 조금 사치를 부리기로 했지. 조부모님의 유산을 사용해서 말이야. 이 병원은 비용이 꽤 들지만 방도 넓고 전망도 좋아. 그리고 환자의 희망을 가능한 들어주지. 이제까지 인생에서 이렇게 사치를 부린 적은 없어. 내게는 이곳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건 조금 우울하지만.” (p. 55)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는 상처가 하나씩 있다. 그 상처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상처를 꾹꾹 눌러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 자신이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애써 마주하려고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치넨 미키토는 유카리와 소마를 통해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유카리와 소마가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던 것도, 그들에게 폭탄이 하나씩 안겨 있기 때문이었으니.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무심한 듯 털어놓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결코 상처를 털어놓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자신의 상처를 인지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옆에 서 있어줄 뿐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에게서 치유되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얼마 전, 메구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해’ ‘가슴이 미어지고 숨 쉬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주 행복

유카리 씨를 바라보면서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p.177)

 

유카리의 머릿속 시한폭탄, 그러니까 유카리의 죽음은 결국 유카리와 소마 두 사람에게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다가오기 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를. 치넨 미카토는 한없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죽음을 결코 그 색채로 사용하지 않는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속의 죽음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색이 아닌 이 삶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알게 해주는 색으로 작용한다.

 

전부, 당신 덕분이야.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살아 있어. 지금 나는 여기에 있고 아주 행복해. 그것은 당신이 나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이야.”

유카리 씨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만진다. 그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걱정 마. 당신도 틀림없이 해방될 거야. 그러니까 경치를 즐기며 좀 기다리자. 이 광경은 지금밖에 볼 수 없으니까.” (p.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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