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문신한 소녀
조던 하퍼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자신으로 인해 타깃이 되어버린 딸이 지키고자 한 남자는 그 어떤 일도 무릅쓰고 해내고자 한다. 타깃이 되어버린 소녀는 아빠의 곁에서 그 누구보다 아픈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져간다. 체리 소다 색 머리와 명사수의 눈을 가진, 곰인형을 들고 다니던 소녀는 그 누구보다 '죽음'을 마음속 깊이 새겨낸다. 미국 추리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제작자 조던 하퍼의 데뷔작 《죽음을 문신한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 부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그려낸다.

하굣길에 자신을 찾아온 아빠 네이트를 마주하게 된 폴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공포에 어린 표정을 한 채 자신을 마주 보던 네이트는 폴리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향한다. 아리안 스틸이라는 감옥 내 범죄조직의 두목인 미치광이 크레이그 홀링턴의 지명 수배를 받게 된 네이트는 그의 부하들로부터 옥죄어오는 죽음의 그물망에서 딸 폴리와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는 세력망에 맞서 네이트와 폴리의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들은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빠가 떠난 지 3년 후, 아빠의 편지가 끊긴 해인 9살 때 그녀는 자신이 금성에서 태어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말 자신이 다른 행성 출신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폴리는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알고 있었고 외계인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금성에서 왔다. (p. 26)

조던 하퍼의 TV 제작자로 활동했던 경험은 《죽음을 문신한 소녀》를 읽는 내내 고스란히 드러난다. 네이트가 거칠게 운전대를 잡은 모습이나 어린 폴리가 곰인형을 흔드는 모습 등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질 정도로, 조던 하퍼는 굉장히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마치 TV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한 행동 묘사에 이어 조던 하퍼는 인물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탁월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어린 소녀 폴리의 시점은 물론, 그녀의 안전한 보호막 아빠 네이트, 도움을 청한 폴리를 찾아 나서는 경찰 존 등 연령, 성별, 성격, 외모가 모두 다른 캐릭터들의 특징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특히 어린 소녀가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는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두드러져 소설의 긴장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이는 등에 단단하게 묶여 있으니 빠져나갈 수도 없다. 이제 그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아이가 안전하게 있을 곳이 세상천지 아무 데도 없다면 남은 곳은 그의 옆뿐이다. 그들이 추락한다면, 함께 추락할 것이고, 아이에게 그거 말고 달리 뭘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p. 65)

《죽음을 문신한 소녀》를 읽다 보면, 사실감 넘치는 캘리포니아 암흑 조직의 묘사가 느아루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자연스레 한 영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 <테이큰>의 브라이언처럼 네이트는 딸 폴리를 지키기 위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두 사람이 처한 차갑고 혹독한 현실과 다르게 폴리를 위한 네이트의 마음은 대조적으로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두 부녀의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죽음'을 알게 된 소녀는 자신의 곁에 다가온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낼까. 부디 체리 소다 색 머리, 명사수의 눈을 가진 소녀의 앞에 행운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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