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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평점 :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판단한다. 자신이 세운 기준의 잣대에서 타인이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의 행동을 할 때, 그를 이상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기준을 가질 수 없으니 여기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왜 너는 그렇게 행동하니?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일 수는 없니?’ 라며.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녀는 때때로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하며, 이상한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종종 숙제도 해가지 않으며, 시험 점수는 늘 낮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소녀의 주변 사람들은 소녀에게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붙여주며, 조금은 ‘다른’ 소녀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 어린애니까.’
모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건강한 여자아이.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던 겁니다. (p.7)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는 저자인 오키타 밧카의 자전적 코믹 에세이다. 초등학교 때 학습장애(LD)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중학교 때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그녀는 ‘발달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지 않은 시절에, 누구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이 에세이 만화의 주인공 소녀 ‘니트로’는 바로 그녀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니트로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발달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작은 소녀를 ‘이상한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준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세상에서 지내던 니트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는다. 소녀의 담임선생님들은 니트로에게 종종 화를 내기도 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아이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네가 변해야 한다고.
니트로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점수가 나쁜 걸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니트로는 ‘마음에 들지 않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p. 108-109)
만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의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니트로를 괴롭히는 선생님들의 행동이 도를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할 선생님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과연, ‘교사’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저 ‘이해받지 못한 아이’였던 니트로는 드디어 중학교 2학년 봄, 드디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 니트로는 이전과는 알 수 없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용기를 얻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2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을 읽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나도 타인에게 나의 잣대를 들이밀며 이상하다고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그들의 다름을 이해하고자 했지만 그저 허울뿐인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의 마지막이 너무도 다행이라며 안심하게 되었다. 조금은 독특했던 소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다름을 인정하고 보여준 사랑과 관심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