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베아트리스는 손이 아플 때까지 열쇠고리를 움켜쥐었다. 아파트 열쇠와 지하 세탁실의 열쇠는 금세 알아봤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듯한 또 다른 열쇠가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 열쇠는 좀 이상했다. 다른 열쇠들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훨씬 정교했다. 더 오래되어 보이기도 하고, 열쇠를 살펴보던 베아트리스는 숫자를 발견했다. '547'이었다. 그녀는 눈물로 부어오른 눈이 저절로 닫힐 때까지 숫자를 빤히 쳐다봤다. (p. 138)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구조공학자로 일했던 D.M. 풀리는 자신의 직업에서 영감을 얻어 《데드키》의 원고를 써 내려간다. 버려진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그녀는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대여금고들로 꽉 찬, 지하의 금고실을 발견한다. 풀리의 모습은 소설 속 '아이리스'라는 건축공학 기술자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풀리는 640쪽의 페이지에 걸쳐 한 금고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자 한다. 1978년과 1998년을 오가며.

1978년, 16살의 소녀 베아트리스는 도리스 이모의 도움으로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의 비서로 고용된다. 어느 날, 베아트리스는 도리스 이모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모의 소지품을 정리하던 중, 베아트리스는 의문의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547'이라는 번호가 적힌 열쇠를 발견한 베아트리스는 열쇠가 가진 비밀을 파헤치고자 한다. 그러나 1978년 은행은 돌연 파산하게 되며, 20년이 흐르게 된다. 1998년, 건축공학 기술자 아이리스는 은행의 설계도를 담당하게 되었고 지난 20년간 은폐되었던 대여금고 속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금고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실종되거나 혹은 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진실의 중심에 있는 '데드키'는 무엇일까?

"왜 데드키라고 부르는 거죠?" 아이리스가 끝까지 물었다.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으면, 우린 '죽었다'고 말해요. 대여금고가 죽으면, 그걸 비우고 다른 대여자를 받아야 하죠. 우린 데드키로 죽어버린 대여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꾸곤 했어요. 지금은 드릴로 틀에 구멍을 뚫고, 틀 전체를 몽땅 갈아치우지만. 짐작하겠지만, 금전적으로는 엄청난 낭비죠."

"대여금고가 자주 죽나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요."

(p. 457-458)

《데드키》는 1978년과 1998년, 20년의 시간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며 전개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대여 금고의 모든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데드키'가 자리 잡는다. 1978년의 베아트리스와 1998년의 아이리스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이 데드키가 불러올 파멸의 끝을 예상하지 못한 채 그것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교차로 진행되는 두 시간 속에서 풀리는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시공간을 이동시키며 독자들의 애를 태운다. 그러기에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도 불과하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소설은 전개된다.

옷이 보수적인 디자인인 것을 보면, 베아트리스는 조용한 성품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처럼 혼자 살았을까? 아이리스는 궁금해졌다. 누군가 그녀를 찾았을까? 여행가방은 베아트리스, 혹은 누군가가 버려둔 뒤로 손이 닿은 흔적이 없었다. (p. 308)

이러한 전개 속도 속에서 풀리는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 두 인물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들이 '데드키'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호기심과 더 나아가 마주하는 진실로 인한 두려움 등 두 인물이 가진 심리를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나 심리 스릴러 소설의 대가들의 첫 데뷔작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처럼 《데드키》 역시 결말은 살짝 아쉬운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닫힌 결말을 선호하는 입장으로서는 대여 금고의 비밀을 밝혀진 이후의 마무리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두운 공간에서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혀내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데드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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