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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평점 :
정말로 초능력은 있는 것일까? 만약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에서 우리는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세상을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지키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원하는 사랑을 쟁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엑스맨>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돌연변이로 여기며 멸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로맨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는 시간을 조절하며 자신이 꿈꾸던 사랑을 이룬다. 그리고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화차》, 《모방범》으로 잘 알려진 미야베 미유키의 1992년 제4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용은 잠들다》가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출간되었다.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인간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년들의 이야기를 더불어 전개한다. 일명 '사이코 메트리'라는 능력을 가진 소년들은 사물을 통해 이전의 생각과 일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을 읽는 능력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속마음, 속마음, 속마음의 홍수. 거기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컨트롤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감정까지 자제해야 한다. 속된 말로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가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p. 144)
폭풍우 치던 밤, 도로를 달리던 젊은 기자 고사카는 도로 위에 서 있던 한 소년을 차에 태우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마을에서 아이 하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고사카는 이 실종 사건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밤새 부모를 도와 아이를 찾기 시작한다. 다음 날,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러 가야겠다는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된 고사카는 소년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으로 인하여 아이는 그 속에 빠졌을 것이고, 자신은 그 범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고사카는 스스로 '사이킥'이라고 부르는 소년 신지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신지와 함께 맨홀 뚜껑을 연 범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지가 말한 신상을 가진 두 청년들을 만나게 된다. 고사카가 신지의 능력을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될 즈음, 자신을 찾아온 오다 나오야라는 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신지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과연, 이 두 소년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나무라 신지를 구해줘. 끌어내야 해. 푹 빠져 있는 꿈속에서 말이야. 쉽지는 않을 테지만 해야 해.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어. 너는 부탁을 받은 거야. 부탁을 받은 이상 응해야만 해. 아니 내버려 둬도 상관 없겠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너도 마음이 아프겠지? (p. 212)
《용은 잠들다》는 젊은 기자 고사카의 시선으로 두 소년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던 두 소년은 각기 다른 환경으로 인해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이미 '사이코 메트리'라는 능력을 알아차린 할머니로 인해서 신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부모의 울타리에서 보호받게 된다. 부모는 신지가 그 능력으로 하여금 받을 상처에서 최대한 그를 지켜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오다 나오야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혼자서 버틸 힘이 부족했던 나오야는 신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그들의 초능력을 마치 '용'에 비유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용은 잠들다》를 통해서 전달한다.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이 있어 신지의 경우에는 잠에서 깨어난 용을 더 가능성 있는 존재로 활용하고자 하지만, 나오야의 경우에는 잠에서 깨어난 용에 의해 오히려 고통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초능력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혹은 초능력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부터 우리들의 엄청난 능력을 잠재우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p. 469)
사람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일 편 적인 생각에 대해 물음을 남기긴 하지만 《용은 잠들다》을 읽으면서 이 소년들의 고뇌가 더 드러났더라면 그 물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용은 잠들다》은 한 어린아이의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이후에 또 다른 실종 사건이 일련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기점으로 소설의 화자인 고사카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그의 사랑 이야기에 너무 치우친 감이 있어 한편으로는 추리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짜릿한 느낌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용은 잠들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스스로에게 남긴 하나의 질문을 끊임없이 곱씹을 뿐이다. 과연 내게는 어떤 용이 잠들어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