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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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 에세이들이 몇몇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부터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겨드랑이와 건자두》도 그런 에세이 중에 하나였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작가 박요셉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인생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겨드랑이와 건자두》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계획에도 없던 늦잠을 자고 일어나 평소보다 더 비참한 기분으로 한 해를 맞이했습니다. 누가 늦잠을 계획하고 자겠냐마는 새해 첫날만큼은 왠지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단 말이죠. 게다가 30대의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한참을 자책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째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대번에 떠올랐지만 곧 잊고 말았습니다. (p. 5)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든 《겨드랑이와 건자두》를 읽다 보니 어느새 피식 웃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요셉 작가만의 위트 있는 문체와 개그 코드가 맞아서 그런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들을 기록하다 보니 꽤나 많은 부분들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마치 한 마리 강아지처럼 집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다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하고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다. 이대로라면 생의 마지막을 집에서 맞는다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p. 142)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로선 나와 같은 집순이, 집돌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 불러주면 기분이 좋다. (물론 당일에 만나자는 약속은 조금 꺼려진다.) '# 집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에서 박요셉 작가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아낸다. 집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이고 그곳에서 하는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임을 이야기하며, 집에 대한 애정을 풀어낸다.

때로 밖을 좋아하는 지인들은 나에게 집에서 대체 무엇을 하기에 나오지 않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에서 얼마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지 일일이 나열하지만, 그게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나 보다. 그때마다 이 글을 보여줄 수도 없고.




길고 길었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밤새워 일하면서 '이 일만 끝나면'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것을 떠올리며 견뎌왔는데, 막상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급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은 후 찾아오는 약간의 어색한 정적. 늘 겪는 일이지만 매번 낯설다. 그래도 이 시간에 느긋하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만큼은 너무 소중하다. 새삼 깨닫는다. (p. 200)

 

4년간의 대학 시간을 마무리 짓는 막학기가 끝났다. 나에겐 길고 긴 프로젝트와도 같았다.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지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못했지만, 막상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이전에 세워두었던 즐거운 계획 등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최대한 찾으려고 할 뿐.

박요셉 작가는 그것을 '연극'이라고 표현하며, 커튼콜이 내려진 그 시간의 정적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고요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바쁜 일이 마무리되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정적이 주는 소중함. 그의 모든 글들이 다 재밌고 즐거웠지만, 유독 이 글이 가장 좋았다.

 

이 외에도 글을 쓰는 과정을 요리 과정에 빗대어 표현하거나 강아지와의 일화 등등 너무도 닮은 구석이 느껴지는 글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저 일상에서 오는 소소함을 위트 있게 느끼고 싶다면, 《겨드랑이와 건자두》를 추천한다. 어쩌면, 당신의 일상과 닮아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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