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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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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릴레이 이론을 채택할 경우, 소거법을 적용하면 결국 그 남자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어쩌면 이걸로 릴레이 이론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지. (p. 301)
1989년에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브루투스의 심장》이 새로운 표지를 입고 독자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로봇'과 관련하여 미래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지만, 로봇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세계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몇몇 작품을 읽다 보면, 완벽 범죄를 꿈꾸는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어느새 독자들은 그에게 마음을 투영하게 되는데, 《브루투스의 심장》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한 데 어우러지도록 만들며 처절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려낸다.
어두운 가정환경 속에서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다쿠야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얻고자 한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관계였지만, 어느새 내연 관계가 되어버린 다쿠야는 야스코에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러나 때마침 전무 딸 호스코와 결혼할 기회가 찾아온 다쿠야는 야스코에게 자신의 아이가 맞는지 추궁하며 그녀를 거절한다. 얼마 후, 다쿠야는 나오키의 호출을 받게 되고 야스코에게 자신을 비롯한 두 명의 남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남자는 자신들이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녀를 죽이기로 계획한다. 서로의 알리바이를 위해 그들은 시체를 바통으로 한 '릴레이 살인'을 저지르기로 한다. 그러나 살인 당일,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자신들이 옮기던 시체가 야스코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계층이 나뉘어져 있고, 자신은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그런 인간이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있다. 그걸 위해선 사람도 죽일 수 있다…….(p. 407)
《브루투스의 심장》의 소설 배경은 중공업을 하는 로봇 공장이다. 로봇으로 인한 자동화 산업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 회사에서 로봇 관리자의 죽음으로 소설을 시작된다. 인간과 로봇의 대비되는 성향을 그려가며 히가시노 게이고는 '성공'을 위해 추악한 짓까지 선뜻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로봇과는 달리 인간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위한 상승을 꿈꾸며 그 선을 넘어서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 준비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히 없애고자 하는 인물들의 행동들은 때로 로봇보다 더 냉철하다고 생각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ABC 살인사건이라는 플롯 구성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이미 주인공을 범인으로 만들고, 역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어느새 독자들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을 의심하게 된다. 사실 형사의 기막힌 추리보다 주인공의 추리가 더 스릴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겁을 먹고, 질투나 할 뿐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대체로 인간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살 뿐이다. 지시가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하는 일이라면 로봇이 훨씬 우수하다. (p. 163)
오랜만에 고전 추리소설 한 권을 읽은 느낌이었다. 대체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결말이 다가오기 전까지 범인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큰 특징인데, 《브루투스의 심장》역시 그러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클래식한 추리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