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의 비밀 편지
스텐 나돌니 지음, 이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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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란다. 편지를 쓰면 내가 더 이상 여기에 없을 때도 누군가는 내가 남긴 말을 볼 수 있거든. (p. 303)

  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종이 위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쓰며 오로지 한 사람만을 생각하게 된다. 이 편지를 받게 될 수신인. 그 수신인을 위한 진심과 사랑은 편지에 남겨지며 언제든 발신인이 그리워지거나 생각날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귀여운 손녀를 사랑한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조금은 특별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쓰기로 한다.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할아버지의 애정이 담긴 12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스텐 나돌니의 장편 소설이다. 손녀 마틸다를 수신인으로 하여 편지 형식으로 진행되는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마법사'의 삶을 그려낸다.
  할아버지 파흐로크는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깨달았던 12가지의 마법을 편지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가장 어린 시절에 발견될 수 있는 마법사의 자질인 팔 늘이기부터 아름답게, 그리고 다르게 보이기, 공중에 뜨기와 날기, 투명인간 되기, 벽 통과하기 등등 마법사들이 연령대별로 배울 수 있는, 혹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마법들을 이야기한다. 파흐로크는 이런 마법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사랑하는 마틸다, 끈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배우렴. 모든 능력들은 끊임없이 시도하다 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법이란다. 때로는 오랫동안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마법은 어느 순간 선물처럼 나타난단다. 네가 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즐거울 때면 네가 아직 못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도 잊지 말거라. (p. 34)

  저자 스텐 나돌니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마틸다의 비밀 편지》를 전개한다. 큰 액자 속에서는 2030년에 어른이 되어 이 편지를 읽을 손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아 편지를 쓰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며, 작은 액자 속에서는 할아버지 파흐로크가 겪은 두 차례의 전쟁과 이후 2017년까지의 삶을 그려낸다. 파흐로크의 경쟁자 슈나이데바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스텐 나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독재자의 편에 선 슈나이데바인의 행적과 징병으로 부대에 들어가게 된 파흐로크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서 그 당시의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했는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마법사'라는 픽션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이 모든 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지각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참혹한 전쟁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현실에 기반한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편지 속의 모든 화자들은(파흐로크, 파흐로크의 유언 집행인 레일란더, 파흐로크의 조력자 발데마르 3세) 모두 현실에 기반한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욱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구분하기에 어려웠다. 그러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모든 것이 이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항상 변신을 거듭하며 살았다. 마법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변신 말이야. 그럴 수 있을 만큼 내 인생은 충분히 길었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믿음을 유지하며 살았지.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산단다. 믿음이 없으면 길을 잃기 쉬워.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다 보면 긴 세월이 위험하게만 여겨질 때도 있어. 하지만 또한 그 세월 속에서 믿음이란 개념이 재발견되는 순간도 적지 않단다. (p. 382)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파흐로크는 훗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낸다.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없어도, 그저 꿋꿋하게 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지혜도 비슷하지. 지혜에 이르는 마법은 없어. 하지만 그게 아쉽지도 않단다.(p.343)" 라는 말과 함께 마법이 아니더라도 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편지를 통해 손녀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 편지를 몰래 엿보는(?) 독자들도 《마틸다의 비밀 편지》를 읽으며 삶을 영위하는데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전 세대에게 배우는 지혜의 값은 너무도 크다. 우리가 그들의 사랑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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