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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레터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6년 7월
평점 :
편지를 써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었다. 예쁜 편지지를 하나 사놓고 그것을 가득 채우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은 물론이었고, 그 편지에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과 마음이 담길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편지지 위에서는 상대방의 눈을 보고 차마 하지 못할 말들도 다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상대방의 눈을 보고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몰라 편지지에 그 진심을 담아내기 어려웠다.
《미 비포 유》로 베스트 작가 반열에 오르며 세계적인 로맨스 작가가 된 조조 모예스의 또 다른 작품 《더 라스트 레터》는 그녀만의 로맨스 방식을 보여준다. 1960년과 1964년, 그리고 40년이 넘어서 2003년까지의 긴 시간을 넘나들며 조조 모예스는 또 하나의 로맨스를 써 내려간다.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랑을 깨닫는 두 남녀를 통해 조조 모예스는 편지가 가져다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더불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지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당신에게 느끼는 내 감정이 두려워요. 누군가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는 게 두려워요."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늘씬한 손가락이 칵테일 냅킨을 접어 비틀었다. (p. 216)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있던 제니퍼는 의식이 들어 깨어나게 되지만, 이내 그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 매일같이 자신을 위해 병실에 찾아오는 남편 로런스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하지만 제니퍼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낯선 느낌을 받는다. 퇴원 후 집에 돌아온 제니퍼는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삶이 모두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매일 저녁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사교계 파티에 참가했다는 자신의 지난 과거가 생각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어버린 것만 같은 기시감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제니퍼의 옆에서 로런스는 그녀에게 좋았던 부부 생활을 각인시킨다.
그러나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가 편지 한 통을 발견한 제니퍼는 자신이 잊어버린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B'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상대방을 찾고 싶다는 목표감에 휩싸인 제니퍼는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로런스는 제니퍼에게 사고가 나던 날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로부터 4년 후, 제니퍼는 남편 로런스와 참가한 사교계 파티에서 자신의 가슴이 알아보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제니퍼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요.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춰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제발 날 안심시켜줘요. 제니퍼는 속으로 그에게 간청했다.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아줘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조금 있으면 모든 기억이 돌아올 거라고 말해줘요. (p. 91)
1부와 2부는 1960년과 196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편지라는 매개체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다가온다. 앤서니는 제니퍼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편지에 녹여내 그대로 전하지만 제니퍼는 기혼 여성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그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제니퍼는 이혼 여성에 대한 잣대가 심했던 당시 시대 배경 때문에 그와의 이혼을 쉽게 결심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 사이에서 제니퍼는 사랑과 이혼 중에서 불안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랑의 감정이 더 커진 그녀는 용기를 내고자 한다. 조조 모예스는 제니퍼라는 인물을 통해서 1960년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냉철하게 그려내며,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더더욱 세밀하게 묘사한다.
40년이 흐른 후 2003년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3부에서는 1부와 2부에서 달라진 시대를 보여준다. 제니퍼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엘리라는 인물을 통해 조조 모예스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더욱 용감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달라진 시대 배경의 흐름에 따라 여성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찾아내는 것도 《더 라스트 레터》를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복잡한 게 하나도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아, 로리. 우린 모두 결국에 가서는 타협하고 사는 거지." (p. 533)
편지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조조 모예스만의 로맨스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더 라스트 레터》를 읽어보길 권한다. 책의 마지막을 덮을 즈음에는, 문구점에 들러 예쁜 편지지를 사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지금 곁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