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벨맨&블랙은 삶과 돈과 죽음으로 북적였다."


  모든 인간은 삶의 끝,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 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하고 명예나 권위를 가진 자라고 하여도, 그들의 삶에도 죽음은 있기 마련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모든 인간을 죽음 앞에서 평등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에게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그는 예견하고 있었을까?
  《열세 번째 이야기》로 데뷔를 한 다이앤 세터필드는 그녀의 두 번째 작품 《벨맨 앤드 블랙》으로 화려하게 귀환한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벨맨 앤드 블랙》은 모든 페이지가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확실하게 형용할 수 없는 그 묘한 분위기는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만든다.

  오두막 옆 참나무 숲에 한때 떼까마귀들이 있었다고, 잠에 빠져 들며 그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내 떼까마귀 울음소리가 그를 깨웠다. 오늘 아침 물레바퀴 근처에서 보았던 오래된 둥지들을 겨우 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p. 111)

  《벨맨 앤드 블랙》은 벨맨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벨맨 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할아버지, 삼촌, 그리고 주인공 윌리엄까지 삼 세대의 걸쳐 내려온 벨맨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다이앤은 주인공 윌리엄의 일대기를 그려낸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며 나뭇가지에 걸터 앉은 떼까마귀 하나를 새총으로 쏴 죽이면서 그의 삶에 녹아져내린 어둠을 조금씩 끌어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쌓여 있지만 윌리엄은 장성하게 되고, 어머니의 권유로 벨맨 방직공장에 출근하며 운영 방식을 차차 배우게 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이 거의 맞물리게 되면서 윌리엄은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삼촌의 인정을 받아 어느새 벨맨 방직공장을 운영하게 된다.
  이윽고 가정을 꾸리고 벨맨 방직공장의 어엿한 주인이 된 윌리엄은 열병으로 딸 도라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게 된다. 마지막 아내의 장례식에 찾아온 '블랙'을 만나게 된 윌리엄은 그와 어떤 계약을 하게 되고 죽음을 전시하고 애도하는 가게, '벨맨&블랙'을 차리게 된다.

  술에 취한 어느 순간, 윌리엄은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만약 존재한다면 신까지도, 인류와는 대립관계에 놓여 있었다. 새롭게 드러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행복은 잔인한 장난이었다. 자신의 운이 좋다고 믿게 만들어놓으면 나락으로 끌어내리기가 한결 쉬울 테니까. 그는 자신의 본질적인 미천함을, 운명을 통제하려 했던 허영심을 깨달았다. 방직공장 주인 윌리엄 벨맨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p. 182)

  죽음은 유행을 타지 않을 것이라는, 윌리엄의 생각대로 벨맨&블랙은 최초의 상조회사가 된다. 장례용품을 직접 만들며, 장례절차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 하며 윌리엄은 바쁜 삶을 살아간다. 다이앤은 주인공 윌리엄을 매우 바쁘게 만든다. 삼촌이 돌아가신 후 벨맨 방직공장을 맡아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시간도 보낼 틈도 주지 않은 채 일을 하게끔 만들고, 이후 벨맨&블랙을 설립한 이후에는 그가 오로지 회사 운영에 신경 쓰도록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늙어 버렸음을 깨닫는 윌리엄 앞에 그가 아내의 장례식 이후 대화할 수 없었던 블랙을 세우면서 그녀가 말하고 싶은 바를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윌리엄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도 그 종착역에 다다르게 된다. 그의 바쁜 삶 이면에 녹아져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를 불안을 마주하고 나면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을 곱씹어 보게 된다. 가을밤, 음산하면서도 서정적인 다이앤 세터필드의 《벨맨 앤드 블랙》은 독자들의 마음을 홀릴 것이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p. 2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