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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평점 :

좋아하는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에서 레이는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장에 털어놓는다. "Dear my diary."라며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엄마나 친구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써 내려간다. 일기장은 묵묵히 레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 어떤 조언도, 참견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레이가 하는 말에 집중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 되면 문득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속마음들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마치 오늘 밤에 이 감정을 어디다 털어놓지 못하면, 너는 잠에 들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빈 허공에 대고 중얼거릴 수는 없으니 간간이 쓰는, 일기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다이어리를 꺼낸다. 몇 줄이라도 끄적이고 나면 괜스레 속이 시원해진다.

《하루 그림 하나》는 일러스트레이터 529 작가가 쉽게 잠들지 못한 1년의 밤을 담아낸 그림일기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엇 하나라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그림일기 속에는, 529 작가의 단편적인 하루가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든지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일기장에 529 작가는 그 누구보다 진솔하게 그리고 적어 내려간다. 복학과 더불어 기존에 하고 있던 일들이 많이 쌓여 있는 터라 529 작가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됐다.
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떠오르는 것들은 성에 차지 않으니 속이 탄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그림은 오히려 딱딱하게 굳어 나간다. 마음에 안 들어! (p. 11)

급한 마음에 엉터리로 적은 문장들을 보면서, 이렇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엉성하게 흘려버렸을까 생각하게 된다. (p. 63)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더 나은 순간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529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나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일기를 써 내려간다면, 10월 한 달 동안은 이런 내용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다. 잘하지 못한다는 자책과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린 많은 일들에 지친 요즘이니까. 《하루 그림 하나》를 읽으면서 그나마 조금은 쉬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안도의 한숨과 조금의 위로도 얻었다.
문득 든 즐거운 생각이 있다면, 《하루 그림 하나》를 날짜에 맞춰 매일 밤마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 나는 이런 하루를 보냈고, 이런 감정을 가졌다고 서로 공유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 남은 2018년 동안 나도 최대한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