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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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가지는 않지만 도서관에 들릴 때마다 항상 800번대 이후의 서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씩 들렸던 800번대 이후에는 다양한 세계들이 담긴 책들이 꽂혀있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문학 범주 속 소설을) 단순히 '재밌다'라는 이유로 읽기 시작했던 문학에서 어느새 다양한 인간상을 보게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은 물론이고, 약하고, 슬프고, 더러운, 인간의 아주 깊고 처절한 마음까지 소설가들은 문학을 통해 표현해내고 있었다.

  만약 그리스도교 작가가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인간의 아름답고 깨끗한 부분만 쓰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더러운 부분, 추한 부분, 눈을 돌리고 싶은 부분을 씁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다른 것은 그 작품 안에서 악이나 죄에 빠진 인간을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돌파하고 지양해서 더욱 절대자로 향하는 지향을, 얽히고설킨 인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작가의 한 가지 일입니다. (p. 99)

 《침묵》을 통해 일본 그리스도교 문학의 정점을 찍은 엔도 슈사쿠는 그리스도교 문학을 통해 인간의 가장 비루하고 약한,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한다. '외국 문학에서의 그리스도교'라는 주제로 진행된 엔도 슈사쿠의 강연들을 모아둔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는 그리스도교 문학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무의식의 세계를 파고들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인간의 더럽고 처절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신이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종교도 없거니와 그리스도교 문학을 접한 적은 처음이라 처음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를 펼쳤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기껏 해봐야 유럽을 배경으로 한 고전 문학 속 등장인물 중 신부나 수녀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교 문학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엔도 슈사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 조금은 아쉬웠다. 좋은 강연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완벽히 흡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통탄할 뿐. 
  작가 엔도 슈사쿠는 다른 작품에 비해 자신의 작품 《침묵》에 대해서는 굉장히 깊은 뜻을 담고 있노라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었음에도 <인생에도 후미에가 있으니까>라는 제목의 강연은 굉장히 흥미로웠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예수상이 새겨진 동판인 후미에는 개항 시기의 일본이 그리스도교인을 향한 박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 후미에를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것을 비유하여 자신의 소설을 써 내려간다.

  전쟁의 시대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후미에가 서로 다를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반드시 자신의 후미에가 있을 겁니다. 그런 후미에가 있기 때문에 제 소설에서 아주 먼 옛날인 기리시탄 시대의 후미에가 나와도, 그것을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나 생활에 투영해서 읽을 수도 있었고, 주인공이 왜 후미에를 밟았는지도 자신의 일처럼 잘 알 수 있었다고 써주었을 것입니다. (p. 18)

  그리스도교 문학이라는 장르가 아니어도 우리는 문학 속에서 추악하고 더러운 인간의 모습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생각을 기반으로 다양한 인간상들을 판단하고 감정들을 느낀다. 인물에 대한 연민, 동정, 사랑, 애정, 분노, 경멸 등등. 그리고 문학 속에서 우리는 평소에 지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에 대해 떠올린다. 마음속에 그것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혹은 이미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새기기도 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 어쩌면 문학 속에는 우리가 삶에서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것들이 숨어 있고 그것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닐까.

  소설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질퍽한 부분, 죄와 악의 부분도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소설을 쓰고 있으면 육욕을 갖고 살인을 범하고 질투심을 가진 인간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략) 모리아크 같은 뛰어난 작가라면 육욕이나 질투 등 그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쓸 때, 스스로 확실히 죄를 범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않으면 '인간을 쓴다'는 소설가의 의무를 등지게 됩니다. (p.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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