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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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른이 된다면, 모든 관계에 능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같지 않듯이 매번 처음이었던 관계 속에서 나는 늘 서툴렀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치이고 상처받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 덤덤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찢어진 마음이 다시 아무는 과정 속에서 나는 항상 생각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잖아.'라고. 끊임없이 외쳐도 여전히 어렵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로 알려진 김신회 작가는 덜컥 주어진 무기한 휴가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경험들을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에 풀어낸다. 쉬는 날에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고, 진짜 휴식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김신회 작가는 자신이 느낀 것들을 전한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이 가장 우선이 되는 일상들을 보내며 그 속에서 안정되어가는 마음들을.

  "저는 작은 거, 사소한 걸 좋아해요. 대단한 거에는 별로 끌리지 않아요." 구체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대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별것 아닌 일이 고맙다. 왜냐하면 그 별거 아닌 일이 사실은 별거라는 걸 알아가기 때문이다. (p. 53)

  이 책을 읽는 도중, 친구에게 SOS를 받았다.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과제로 자신의 장점을 200개 써오라고 했다며 나에게 자신의 장점을 물었다. 무슨 그런 과제가 있냐며 친구에게 몇 가지 살짝 던져주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내 장점을 200개 이상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도 묻고 싶은 문제다. '너랑 있으면 재밌어', '넌 정말 배려심이 강해'라는 타인의 말로 판단했던 나의 장점들이 아니라 스스로가 생각한 장점들이 있는지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20개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나는 나를 아끼지 못했다는 증거겠지.

  뭐기는, 왜 이러기는.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위로받고 칭찬받는 거, 그런 거 없어도 잘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던 거다. 난 여전히 약하고 서툴고, 그래서 따뜻한 다독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창피하긴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그동안 나에게 필요했던 건 자기반성이 아니라 자기 연민이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p. 147)



   미소처럼 나도 행복을 위한 수칙을 만들어볼까.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되는 즐거움의 일과 같은 것. 꼬박꼬박 숙제하듯 오늘의 소확행을 실천하며 사는 것. 그렇게 앞뒤 꽉꽉 막힌 인생에서 나라도 내 숨통을 터주어야지. 따지고 보면 그걸 나 아니면 또 누가 해주겠는가. (p. 136)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살아왔지만 그 속에 정작 있어야 할 것은 없었다. 나를 위한 일이라며 다독여 왔던 것도 사실은 나를 향한 채찍질에 불과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즐거워진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죄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풀어줄 때가 왔다.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기에도, 이 삶은 너무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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