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희망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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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은 잠에서 깼다. 꿈을 꾼 건 알겠는데, 무슨 꿈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의식의 가장자리 너머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려고 애를 쓸 때의 익숙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달리는 차가 일으킨 바람에 종잇조각이 날리는 걸 보고 차가 지나갔다는 것을 알듯이, 그는 꿈이 남긴 것으로 그 꿈을 추측할 수 있었다. (p. 13)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패트릭 멜로즈 5부작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일말의 희망》은 《괜찮아》와 《나쁜 소식》에서 다섯 살, 20대의 패트릭 멜로즈의 하루를 그려내었듯이 30대가 된 패트릭 멜로즈의 하루를 그려낸다. 
  가학적인 아버지와 무관심한 어머니로 인해 얼룩져버린 패트릭 멜로즈는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린다. 그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살아갈 만큼 그의 인생에 아버지가 차지하는 부분은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약'이라는 환상과 꿈에서 깬 패트릭은 여전히 방황한다. 그 이전의 상처와 아픔들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죽고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청년기는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성숙의 흔적은 없었다. 슬픔과 탈진이 증오와 광기를 숨기는 경향을 '성숙'이라고 하지 않는 한은 그랬다. 많아지는 선택지와 두 갈래길을 늘 마주한 듯한 느낌은 어느새 긴 실종 선박 목록을 보며 부둣가에 서 있는 것 같은 황량한 느낌으로 대체되었다.  (p. 17)

  그 어디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던 패트릭은 여전히 자신이 속해 있는 영국 상류층의 파티에 초대된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인해 상류층 사교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친구 조니와 파티에 가지 않기로 약속한다. 물론, 그와 함께 마약 중독자였던 친구 조니 역시 자신이 그 파티에 가게 된다면 또다시 평정심을 잃고 마약에 손을 댈까 두려워 패트릭과 함께 파티에서 빠지기로 한다. 영영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두 마약 중독자들은 그 꿈과 환상에서 깨어난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패트릭 멜로즈가 참석하지 않은 파티의 모습을 통해 영국 상류층의 빛바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곳에 모인 인물들 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허영과 독설, 위선과 아부 등을 세밀하게 꼬집어낸다.
  한편, 패트릭은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분노와 증오의 원인을 조니에게 털어놓는다. 스스로가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는 하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큰 결심을 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이젠 증오하기도 지쳤어.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증오 때문에 그 일에 속박되는 건데, 나는 더 이상 어린애로 있고 싶지 않아."(p. 115)


  패트릭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수치스럽기도 한 진실을 남에게 말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불만스러웠다. 고백의 카타르시스는 없었다. 어쩌면 너무 추상적으로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여러 정신적 장애의 집합을 가르키는 암호명이 되어 있었다. (p. 117)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상처의 억압에서 살짝 벗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요한 호숫가에서 보았던 백조 무리처럼, 그도 언젠가 자유로이 헤엄치며 그 기억의 영향 속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3부까지의 내용이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면, 남은 4부와 5부는 그에게 또 다른 의미로 영향을 주었던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 앞으로 패트릭 멜로즈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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