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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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p. 375)

  때로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예상하고 단정 짓는다. 그것이 사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간에 우리의 예단으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진실은 여러 부분을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을 보는 것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자기가 편한 대로 예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C. J. 튜더의 데뷔작 《초크맨》은 바로 그 예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날 밤, 늦은 시간 차고 문을 열었다가 아이들이 차고 진입로 위에 분필로 그려놓은 일련의 초크맨들을 보고 C. J. 튜더는 이 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의 장난으로 그려진 초크맨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는 묘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행맨과 같이 목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나 균일하지 않은 팔과 다리는 기괴한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싹하다면 오싹할 수 있는 초크맨의 느낌들은 소설 《초크맨》에 고스란히 녹아진다.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 항상 호기심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특이한 주인공, 분필로 그린 섬뜩한 그림 그리고 소름 끼치는 살인. 우리는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초크맨 모양의 조그만 흔적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해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실은 윤색됐고 진실은 점점 모호해졌다.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p. 89)

  어느 날, 조용한 마을 엔터 베리에 떠들썩한 사건이 일어난다. 살해된 소녀의 토막 난 신체 일부가 발견되었고, 머리는 발견할 수 없어 여전히 사건을 미궁 속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 1986년, 당시 열두 살이었던 에디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축제가 열린 토요일 밤, 에디는 새로 부임한 영어 선생님 핼로런 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같은 장소에 있던 핼로런 씨와 엮이게 된다. 며칠 뒤, 에디와 가족들은 에디의 친구 개브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디의 아빠는 니키의 아빠인 마을 교회의 목사와 싸우게 된다. 그리고 그 뒤부터 엔터 베리에서는 섬뜩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건 장소에는 항상 초크맨이 남겨진 채……

  이제 그리운 추억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햇빛이 아른거리는 오솔길을 걸으며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이 길은 웃자란 거짓말과 비밀이 한데 뒤엉켜서 어두컴컴하고, 움푹 파인 구멍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길에 초크맨이 있다. (p. 247)

  《초크맨》은 1986년과 2016년이라는 3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주인공 에디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연계된 두 시점을 연결 짓는 단서들을 종합하여 독자들은 소녀를 살해하고 토막 낸 범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을 의심한다. C. J. 튜더는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사건들을 나열한다. 그러나 결코 《초크맨》에서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서 당연시되는 법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즉, 저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페이지 터너'라는 수식어가 적합할 정도로 《초크맨》은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손에서 놓지 못하게끔 만든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독자들의 등장인물에 대한 의심을 깊어지지만 여전히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C. J. 튜더는 탄탄한 트랩들을 설치한다. 그 누구도 이 소설이 끝나기 전까지 누가 범인인지 단정 짓기 어려워진다. 과연 우리의 예단으로 하여금 보지 못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스스로 해답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정답이다. 그게 인간의 천성이다. 우리는 원하는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질문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진실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냥 진실인 습성이 있다. 우리는 그걸 믿느냐 믿지 않느냐만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p.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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