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종종 사회봉사를 다녔던 나는 여전히 첫 사회봉사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요양원으로 배정받았고 그곳에서 청소와 식사 준비를 도와드리는 일을 맡았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길러주신 터라 요양원에 가는 것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봉사가 꽤나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가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셨는데, 친구와 내게 같은 질문을 계속 물어보시기도 하시고 옷을 수선해야 되니 칼을 가져오라며 소리를 지르 시기도 하셨다. 할 일을 마친 뒤 잠시 쉬는 동안 할머니들을 바라보았다. 그분들이 하실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소파에 앉아 TV를 보시는 게 전부였다. 그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TV만 보실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SNS에서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2017년 6월, 도쿄에 있는 불과 열두 석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단 이틀간만 열린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의 소식은 일본의 전 지역은 물론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 요리점에서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일반 식당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치매 환자였다. 

'주문을 틀리다니, 이상한 레스토랑이네' 
당신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저희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입니다.
가끔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저자이자 프로그램을 기획한 일본 NHK 방송국의 PD 오구니 시로는 취재 차 나간 치매 환자 간병 시설에서 햄버그스테이크 대신 만두가 나온 것을 보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영감을 얻는다.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까지, 또 실행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오구니 시로는 이 책을 통해 '치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기를 희망한다.
  
  '누구든지 그곳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러 넘치고 있었다.
  오픈 전날 아침, 모두가 다짐한 것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도, 손님도, 우리도 '하길 잘했다'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자고. (p. 140)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가진 가치는 대단했다.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한 관계자들에게도, 식당을 방문한 손님에게도, 그리고 홀에서 서빙을 했던 치매 환자들에게도 좋은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처음 치매 환자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하던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의외로 활발히 움직이는 치매 환자들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손님들도 그 모습에 즐거워했다. 그 누구도 음식이 잘못 나온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식당의 컨셉을 이해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관용'이 나타났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맛있는 과자와 읽을거리를 살 수 있다.
그 사실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해져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물건을 사는 요시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p. 49)

  손님들이 보여준 관용 속에서 치매를 앓고 있던 종업원들이 일을 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되찾는 느낌을 보여준다. 손님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볍다. 중학생 때 봉사를 하며 보았던 할머니들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었던 생기 있고 활기 넘치는 모습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치매에 대해 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을 억누르고 제약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우리가 그들 자신을 잊어버리도록 만들지는 않았을까?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늙어서도 나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노후에 대한 걱정과 막연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더구나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불리는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노인과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더불어 사는 삶이 어떤지 말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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