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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의 기적 - 생각을 멈추고 여유를 찾는 뇌의 비밀
스리니바산 필레이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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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쓰려고 거의 한 시간 동안 애를 쓰고 있지만 진척이 전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펜을 내려놓거나 컴퓨터에서 떨어져라. 그런 다음 뜨개질을 하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손톱 정리를 하는 등 힘들지 않은 활동을 선택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선택한 활동에 몰두하고, 논문 작성에 진척이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좌절을 자기 대화로 씻어 버린다! 자신에게 이 짧은 휴식을 선물하고, 문제의 논문으로 곧 돌아가기 위해 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p. 94)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서평 쓰기를 앞두고 나는 항상 고민에 빠진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온전히 나만의 글을 쓰고 싶은 그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 고민의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적절한 첫 줄을 쓰지 못해 좌절감에 자주 빠진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 글의 첫 줄을 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페를 찾아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화면을 죽어라 노려봤다. 첫 줄도 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결국, 밤이 되어서야 글의 첫 도입부를 써 내려간다.
《멍 때리기의 기적》을 갓 읽어서 그런지 아직 그 습관이 몸에 배지는 않았나 보다. 다년간 뇌 과학을 연구해 온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 스리니 필레이는 저서 《멍 때리기의 기적》을 통해 뇌의 비집중 모드가 가지는 가치를 설명한다. 나처럼 글을 쓰거나 학업에 매진할 때 우리는 '집중! 집중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물론, 집중의 힘이 발휘되면 정확하게 목표를 조준하면서 사고와 감정, 행동을 통합해 임무를 수행하고 완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들은 과유불급이다. 과잉 집중은 먼 미래에 일어날 상황의 중요성을 축소화시키거나 배려의 상실을 야기한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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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이든 뇌 발달에 기여한다. 곧고 좁은 길에서 벗어나면 예기치 않았던 통찰을 얻고, 같은 주제에 대해서라도 새 관점에서 바라보고 열정을 추구하는 정신력을 얻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질을 형성할 수 있다. (p. 17)
스레니 필레이 교수는 우리에게 '비집중 모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의 목표에 집중해 주변을 살필 수 없는 집중과는 다르게 비집중은 멀고 넓은 곳까지 비춰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까 잠을 자는 동안에도 20%의 용량을 사용하는 뇌에게 집중이 아닌 휴식(비집중)은 더 나은 창의성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비집중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를 활성화시키는 동안 뇌는 충전하고 조정해서 필요할 때 창의성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침착해지고 혁신으로 향하며 자아감이 강화된다.
비집중은 지적인 형태의 내려놓음이다. 비집중은 사고를 유연하게 해주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항복할 수 있게 해준다. 다음 단계의 사고로 움직일 수 있는 마찰 없는 구역을 제공하고, 자기 본연의 모습과 더욱 깊이 연결시킨다. (p. 59)
《멍 때리기의 기술》을 통해 스레니 필레이 교수는 뇌가 가지고 있는 '인지 리듬'에 대해서 설명하며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중 회로와 비집중 회로 간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습관, 불확실성, 집중 중독, 집중 재발 등의 과잉 집중을 요하는 행위들이 오히려 인지 리듬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인지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몽상, 마음 방랑, 상상, 공상, 자기 대화, 몸 사용, 명상 등의 비집중 모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는 총 6장에 걸쳐 정확히 어떤 비집중 모드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연구 사례와 흥미로운 예시를 이용해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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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개발하고 영감에 항복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내려놓는 기술이다. 잠시 길잡이로 삼았던 외부 세계에서 벗어나 내면에 있는 주의의 흐름에 주목한다. (p. 73)
《멍 때리기의 기술》을 읽다 보면, '앞만 보고 달려라!'는 결코 옳은 생각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년 전, 공모전을 준비했던 때가 생각났다.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팀원들과 카페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곰곰이 생각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라는 팀원의 말에 모든 신경을 노트북에 집중해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하지만 문제는 과잉 집중 때문에 인풋이 들어가도 사고 회로가 정지되어 아웃풋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을 비우고자 잠시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때만큼은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주변만 둘러보았다. 그렇게 모든 볼일을 마치고 마지막 물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아!'하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돌아가는 길엔, 잊어버리지 않도록 중얼중얼하며 모든 신경을 그곳에 쏟아부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결코 최선의 결론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최선이었다. 그때부터 팀원들과 나는 생각이 막힐 때마다 "해우소 한 번 다녀와!"라며 농담을 던지며 공모전을 마무리했다.
뇌는 마술사처럼 모자에서 새롭고 분명한 기능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만지작거리는 과정을 거치며 발달한다. 우리는 진화를 거치며 뇌를 만지작거려 개발하는 비집중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p. 300)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창의성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멍 때리기의 기적》은 뇌가 가진 특성을 기반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집중 모드'를 실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멍 때리기의 기적》을 통해 정확한 뇌 사용법을 알아냈으니 이제 그것을 내면 깊이에서 더 끌어올려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에겐 '멍 때리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