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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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장을 넘긴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의 두께감에 눌려 선뜻 손을 뻗기는 어려웠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흡입력 있는 빠른 전개 속도에 빠져들었다.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으로 꼽히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최초로 모두 수상한 작가 할런 코벤의 《단 한 번의 시선》은 그렇게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1,2권으로 분권이 되어있던 책을 합본으로 개정하여 다시 펴낸 책이었는데, 어쩌면 출판사의 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 번 집어 들면, 다시는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당신이 맞는 것 같소."
  "뭐가요?"
  "아까 했던 말 말이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스콧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환상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소." (p. 22)

  검찰청에서 일하는 스콧 덩컨은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 몬티 스캔런의 면회 신청을 받고 그를 찾아온다. 스캔런은 스콧에게 십오 년 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고백한다. 사고라고 종결된 스콧의 누나에 대한 죽음에 대해 스캔런은 사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은 의뢰로 그녀를 죽였다고 자백한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레이스는 남편 잭과 두 아이와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사진 현상소에 들러 현상된 사진을 받아들고 두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찾아간다.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현상된 사진을 확인하던 그레이스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네 명, 아니 구석에 있는 한 명까지 다섯 명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던 그레이스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사진 속 인물 중 금발머리 여자 얼굴 위에 커다란 엑스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남편 잭의 모습이 그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도. 그레이스는 남편에게 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얼버무리던 남편 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된다. 

  공간. 잭은 분명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어색하고, 짜증나고, 모호한 핑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더 견딜 수 없다는 끔찍한 완곡어법만큼이나 무의미한 말이었다. 만약 그런 의미로 한 말이라면 적어도 단서는 될 수 있었겠지만 이 경우엔 달랐다. (p. 108)




어쩌면 우리는 모든 진실을 알면 안 되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진실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르지.

  평온한 일상에 우연히 날아든 사진 한 장은 그레이스의 끝없는 추락을 예고했다. 할런 코벤은 거미줄같이 촘촘한 인물관계를 설정한 뒤 잘 짜인 퍼즐 조각들을 독자들에게 흩뿌린다.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의 수에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이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인물들 틈에서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다. 가독성이 높은 할런 코벤의 소설은 독자들을 꽤나 깊게 소설 속으로 끌어당긴다. 
  일상을 바꿔버리는 사건 하나로 시작된 《단 한 번의 시선》은 결말로 향할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레이스와 스콧은 물론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을 추락시킨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달려든다. 인물들 간의 겹겹이 쌓인 오해 속에서 왜곡된 기억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할런 코벤은 침착하게 그 진실을 풀어나간다. 그가 마지막에 풀어 놓은 사건의 진실을 아는 순간, 전혀 생각지 못한 사실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난 당신이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베스파 씨. 진실을 들을 때가 온 거란 말입니다. 이제 이 모든 건 여기서 끝을 맺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그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난 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걸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난 뒤 날 어떻게 처리할지는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p. 465)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비웃는다.



그레이스는 진실을 덮기 위해 누군가 철두철미하게 세워 둔 계획을 모두 알게 된다. 그 계획을 모두 밝힌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잠재울 수 없게 된다. 할런 코벤은 그레이스와 함께 혼란스러운 독자들에게 마지막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한다. 모든 것이 밝혀진 마당에, 편하게 긴장의 끈을 놓자마자 뭔가에 세게 맞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시 스릴러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녀는 그를 그려보고 싶었다. 존도, 셰인도 아닌 잭을 그려보고 싶었다. 왠지 혼란스럽고, 망설여질 것 같았지만 막상 캔버스 앞에 앉으니 붓이 절로 춤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의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p. 574)

  《단 한 번의 시선》을 다 읽고 나서, 할런 코벤의 또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그의 소설은 대부분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두께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또다시 더운 여름밤, 서늘한 스릴러가 읽고 싶어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할런 코벤의 작품을 집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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