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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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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라는 사소한(그러나 먹고사는 생사와 가장 연관성 있는) 고민부터 시작해 "내가 좋아하는 만큼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줄까?"라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것까지 우리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 고민들을 담은 머릿속은 늘 복잡하고 시끄럽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민한다. 즉,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였지만, 나는 '고민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두고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지만, 나는 '고민하는 갈대'라 하고 싶었고,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하지만 나는 '고민하는 동물'이라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사피엔스 종의 무수한 표현 중에 왜 '호모 고미니우스(고민하는 존재)'가 없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p. 8)
우리를 '호모 고미니우스'라 칭하는 작가 최민석의 에세이 《고민과 소설가》는 다양한 고민들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주간지 <대학내일>에서 <Ask Anything>라는 이름으로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엮어 노란 표지의 작은 고민 상담소를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쉽고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이 고민 상담소는 자아, 사랑, 관계, 미래, 총 4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들의 개인적 취향에 맞게 주제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다.
대체로 내담자들은 20대다. 같은 20대여서 그런지 내담자들의 고민 내용은 하나같이 공감된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고민들, 부모님께 의견을 물었던 고민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속으로만 끙끙 앓았던 고민들까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또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고민들을 한눈에 만날 수 있다. 모든 고민들은 내담자들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는데 '웬만한 남자보다 머리가 커요', '여자친구가 제 앞에서 개그우먼 박나래와 안영미 춤을 따라 춥니다. 어쩌죠?'라는 눈길을 끄는 고민도 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정진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저 순리대로 닥쳐오는 상황을 해결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p. 200)
속으로만 끙끙 앓는 고민의 주제 중에 타인에게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라는 또 다른 고민을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인이 혹시나 나의 주제를 너무 가벼이 여기지는 않을까, 또는 그 반대로 나의 주제를 너무 무겁게 받아 들어 같이 한껏 우울 모드로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고민들. 《고민과 소설가》는 고민에 대해서 한없이 진지하게, 무겁게 다가가지 않는다. 고민의 정도에 따라 최민석 작가는 툭 던지는 듯한 느낌으로 가볍게 접근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적절한 선을 지켜 진중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나는 오히려 재치 있고 유쾌하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이 내 고민에 대한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느낌이라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정리하자면 세상엔 영화보다 무서운 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하고픈 대로 꿋꿋이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잠이 안 올 때는 코코아를 마셔보고,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제 소설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 소설은 상당히 지루해서, 불면증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p. 33)
유쾌한 작은 상담소 《고민과 소설가》의 또 다른 재미는 아무래도 '추신'인 것 같다. 고민 상담을 마친 후 남긴 추신의 대부분은 작가가 자신의 책을 추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어디선가 최민석 작가의 책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을 추천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지 않고 빌려 읽는 것이 고민이라던 작가님의 고민을 해결해드리고자 아무래도 책을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과 소설가》로 나의 고민이 조금은 해결된 느낌이니, 독자로서 작가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드려야겠다. (고민 해결의 상호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