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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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혼술'을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픔을 나누는 것보다는 혼자 삭히는 것이, 이렇게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이렇게 혼술을 한다." 주인공들이 '혼술'을 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술'이라는 것이 주인공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술은 혼자 마셔도, 누군가와 함께 마셔도 매력적이다. 혼자 마시면 술에게 위로를, 같이 마시면 상대방에게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은 '술'에 대하면 빠지지 않는 주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주희를 중심으로 하여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망하는 3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대에는 어떤 목표라도 실행할 수 있는 패기와 열정으로 버텼지만, 서른을 앞둔 주희는 그 앞에서 현실과의 타협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자신에게 1년간의 휴식 시간을 선사한다.

  어떤 술은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게 매력적이라면 독주는 혀에서 목 안쪽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찌릿함이야말로 매력의 원천이다. 나는 홧홧한 속을 개운한 국물로 달래고 다시금 슬쩍 독한 술 한 모금을 흘려 넣었다. 비록 혼자 마시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짧은 이사의 마무리로 이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 같았다. (p. 38)

  《애주가의 결심》의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소설의 화자 주희는 꿈과 현실에 놓여 고민하는 청춘을 그대로 대표하고, 주희의 사촌 언니 우경과 술친구 배짱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열렬하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특별하지 않은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위로하는데, 그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스스로에게 금주령을 내린 우경은 퇴근 후 편의점이나 드럭 스토어에서 군것질을 쓸어 오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며 낙을 찾고, 술을 좋아하는 주희와 배짱은 망원동의 술집들을 찾아다니며 즐거움을 느낀다.
 
  활력이 넘치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함께 웃는 시간의 유효기간에 대해 몽상했다. 몇 해 뒤에는, 혹은 고작 일이 년이 지난 뒤에는 지금 한자리에 모여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를 스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p. 82)

   《애주가의 결심》은 주희를 중심으로 사건 전개가 이루어지지만 극적이지는 않다. 잔잔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사건 전개는 마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연상시킨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드라마처럼 은모든 작가는 《애주가의 결심》의 주인공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따뜻한 온도로 데워 놓은 사케처럼. 그래서 주인공만큼이나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그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편, 술과 적절한 안주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주희를 통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술 종류와 적절한 안주를 접하게 된다. 은모든 작가는 술과 음식에 대해 굉장히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하며, 독자들은 읽는 내내 주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묘사로 인해 밤에 읽기에는 너무 배고픈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이가 있다는 즐거움이 그대로 전해져 그 부분을 읽는 내내 즐겁다.

  적당히, 기분 좋게, 하고 나는 되뇌었다. 세상에는 무한한 매력을 가진 술이 넘치고 양옆에는 그 매력을 오래도록 함께 들여다보고픈 이들이 있었다. 그러니 얼마든지 적당히,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취한 상태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지만 기분 좋게 취하는 일 자체를 포기할 이유도 없다. (p. 243)

  꿈과 현실이 달라 힘들어도 함께 즐겨줄 이가 있다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술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좋지만, 함께 마셔주는 이들과 한바탕 호탕하게 웃어넘기는 것도 위로가 된다. 잔을 맞부딪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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