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창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열두 명의 신이 올림포스에서 지내며 인간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야기. 사람과 동물의 몸이 섞인 켄타우로스나 스핑크스, 사이렌 등 신비한 생물들이 등장하고 하늘과 땅, 지하 세계를 그려내며 넓은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었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부탁으로 프로메테우스 형제들이 인간들을 창조했다(신들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인간들의 상상력에서 신들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신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예술 콘텐츠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신화의 한 장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미술을 넘어서 다양한 문학과 영화 산업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 <>이나 영화 <트로이>, <타이탄>,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등등. 신화는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콘텐츠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하자 오딘과 토르를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 신화도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양 세계의 반대편, 동양에는 어떤 신화가 있을까? 이 질문에 역사 시간에 잠깐 배웠던 고조선 단군 신화와 고구려 주몽 신화 외엔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밖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전설이나 민담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었다.) 동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신화가 없는 것일까? 정재서 교수는 이 질문에 ≪이야기 동양 신화≫를 통해 대답한다. 동양 신화들의 원형을 밝히며 어떤 재미있는 상상력이 가미되어 이야기를 화려하게 만들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주며, 주변 문화 및 다원주의적 입장에서의 중국 신화를 바라보고 한국 문화와의 상관성을 밝히는 관점을 고수하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사람마다 상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동양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배우게 될 소중한 교훈이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안데르센 동화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p.8)
 
  ≪이야기 동양 신화≫는 ‘중국 편’이라는 소제목으로 동양 신화의 커다란 몫을 차지하는 중국 신화를 중심으로 들려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분도 중국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중국 신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읽는 내내 연상되는 우리나라 신화의 장면들을 느낄 수 있다. 아마 신화가 문화의 원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 일본 문화를 아울러 동양의 문화는 동양 신화들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정재서 교수는 문화의 원형을 알게 되면 오늘의 문화 현상을 더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더 나아가 지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공해, 인간성 상실 등 각종의 심각한 문제를 앓고 있다. 따라서 생태적 감수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 시점에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표현하였던 자연신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p.158)

  여러 동양 신화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동양 신화, 특히 중국 신화에서는 여신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여신들이 남신의 아내, 딸로 그려지면서 그 비중이 현저히 적음을 느낄 수 있는 데에 반해 (그동안 여신들이 아내, 딸로 그려지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너무도 당연한 나의 인식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중국 신화에서는 여신들은 독립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여와, 서왕모 등의 여신들은 창조와 생명을 관장하는 이미지로 그려지며 그들의 입지를 굳건하게 다진다. 하지만 모계 중심 사회를 반영하고 있던 신화는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여신들의 위치는 변화하게 된다. 독립적이었던 여와는 땅의 신 고비의 딸이 되고 복희의 여동생이 되고, 인류의 대를 잇는 한 남자의 아내로 전락하게 된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던 당시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한편, ≪이야기 동양 신화≫에서는 현실과 허구의 사이에 공존하는 () 나라 요순시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동양에서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특수성을 반영하여 중국 역사의 시초라고도 불리면서 동시에 전설적인 나라로 불리는 하 나라에 대해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동양 신화에서는 신들도 이들 성군이나 건국의 영웅들처럼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지닌다. 한때 이런 이유로 서양의 일부 학자들은 동양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화가 없다"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신과 인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그들의 눈에는 가령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신화도 한갓 전설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특정한 신화를 표준으로 이야기의 풍토가 다른 지역의 신화를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인 일인가를 알게 된다. (p.299)
 
  가장 가까운 상상력의 바다를 두고 너무 멀리 있는 바다들을 동경하지는 않았는지, 서양의 문화에 너무 익숙해 스스로 동양 문화는 하대하지 않았는지 ≪이야기 동양 신화≫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만큼 동양 신화도 굉장히 흥미롭고 다채롭다. 충분히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동양 신화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은 이 장엄하고 웅장한 상상력의 바다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동양 신화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다양한 콘텐츠로 진화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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