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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5
이나미 리쓰코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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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입 전형 중 나는 '적성'을 선택했다. 제한 시간 내에 주어진 문제들을 기계적으로 풀어 고득점을 받아야 하는, 2시간 만에 모든 지식들을 쏟아내야 했던 지옥 같았던 시험 말이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역이었던 건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고유어와 고사성어를 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고유어를 열심히 외웠지만, 24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고사성어에 대해 알고 있었던 때는 고3 수험생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외운 고사성어를 지금까지 잘 우려먹고 있는 것 같다.)
당시에 고사성어를 외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한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쪽지시험을 통한 무작정 암기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나쁜 기억으로만 남은 '고사성어'였다. 하지만 만약 그때 내가 ≪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라는 책을 일찍 만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나미 리쓰코가 쓴 ≪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는 4천 년이 넘는 중국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장면들 속에서 함축적 의미를 지닌 다양한 고사성어의 탄생들을 들려준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고사성어들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 역사를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낸다. 고사성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덤으로 중국 역사를, 중국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덤으로 고사성어까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등을 포함한 전통 동아시아 세계의 공통 문어였던 한문과 이를 사용한 문헌에서 보이는 고사성어의 활용이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하겠다. 중국을 무대로 전개되는 주요 인물들의 생애와 활약을 고사성어로 접근하면서 그들을 통해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p.301 '역자 후기' 中)
중국 문학을 전공한 저자 이나미 리쓰코는 『사기』 나 『삼국지』 등 중국 고서들에서 고사성어들을 발췌해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설명한다. 신화나 전설에서 볼 수 있는 요순시대부터 마지막 황제의 나라인 청나라까지 고사성어로 풀어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담은 '관포지교',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음을 뜻하는 '도원결의'부터 중국 4대 미녀에 속하는 양귀비를 일컫는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 북송의 시인인 왕안석의 「석류시」로부터 전해내려오는 '홍일점'까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사성어들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고사성어에 담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고사성어였는지 추론하고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들이 만들어지는 일화도 있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것은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에 얽힌 이야기였다.
조나라 혜문왕이 '화씨벽'이라는 아름다운 구슬을 손에 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진(秦) 나라 소양왕이 화씨벽을 갖고 싶어 "진나라의 열다섯 성(城)과 구슬을 교환하고 싶다"라고 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혜문왕의 입장에서는 화씨벽을 넘겨줘도 필시 성은 받을 수 없을 것 같고, 화씨벽을 넘겨주지 않으면 진나라 군대가 그것을 빌미로 쳐들어 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때 인상여라는 무명의 신하가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갔고 소양왕과 담판을 벌여 화씨벽을 다시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구슬은 온전히 지킨다는 뜻을 가진 '완벽'이라는 말도 이 인상여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져 흠이 없이 완전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매우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p.111)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내다보니 명나라와 청나라의 비중은 다른 시대에 비해 적은 분량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유래된 말이 적어 그 비중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서 유래되어 온 말들을 다음 시대에서 사용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아마 그 이유에서 이 책이 만들어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사성어나 중국 역사에 대해 흥미롭게 접근하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