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이 남기는 흔적은 매우 진하다. 미지의 것으로부터 오는 그 강렬한 느낌은, 우리를 좀처럼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난 욕망은 그것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처음이라는 특성이 주는 경험은 너무도 강렬하다. 사랑은 그 자체로도 열정적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서로에게 서로를 인식시키고자 하는 행동들을 하게 만든다. 사랑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고자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처음 겪게 된다면 어떨까? 첫사랑은 뜨거운 열병처럼 다가오고, 그 흔적도 깊게 남는다.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인 ≪그해, 여름 손님≫은 첫사랑의 열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사랑에 빠진 엘리오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경험했던 첫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처음 사랑에 빠진 우리가 머릿속에 오로지 그 사람으로 가득 채웠던 그 순간을 말이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격정적인 숨 막힘을 간직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이나 여운이 남았다. 앞으로 매일 밤 꿈에서 그런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찌 돼도 좋으니 평생 꿈만 꾸고 싶었다. (p.137)

​  작곡가 지망생인 엘리오는 매년 여름을 별장에서 지낸다. 여름마다 엘리오의 부모님은 책 출간을 앞둔두고 원고를 손봐야 하는 학자들을 손님으로 받았는데, 그 해 여름 엘리오의 여름을 강하게 만들어 줄 손님이 머물게 된다. '나중에요!'를 외치며 택시에서 내리는 파란색 셔츠를 입은 올리버는 엘리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다. 엘리오는 강렬한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하며 독서하고 테니스를 치는 올리버의 모습에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자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강렬한 햇살 아래의 여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

 

 사랑을 하면, 우리는 강렬한 이끌림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서로에게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다. 동성애를 다룬 퀴어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두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둘 사이의 벽을 넘지 못한 사랑을 그렸지만, 그 벽이 결코 동성애는 아니다', '내 얘기일리가 없는데 내 얘기 같은 기묘한 공감이 되는 영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느꼈다. 왜 우리는 사랑은 남녀가 만나 이루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지에 대해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은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당신은 왜 사랑을 한 가지로만 생각하느냐고.
​  올리버를 바라보는 엘리오의 눈은 여느 첫사랑에 빠진 소녀와 다를 게 없었다. 그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고, 문득 떠오르는 그의 잔상으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보여준다. 나를 한번 더 보이기 위해 그의 눈길을 끌기 위한 질투심 유발 행동도 보여준다. 어쩌면, 엘리오의 행동이 소녀처럼 보인다는 생각조차 나는 사랑을 한 가지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그들의 사랑을 어떤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지도, 한 면만 바라보지도 않는 유일한 인물은 엘리오의 아버지뿐이다.

  두 남자가 아니라 그저 두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평등함이 느껴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저 나이가 더 적고  더 많은 두 사람이 인간 대 인간, 남자 대 남자, 유대인 대 유대인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p.165)

  강렬한 햇빛 아래 반짝이던 엘리오의 첫사랑은 여름의 끝과 함께 한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도, 짧다면 짧을 수도 있던 첫사랑의 열병은 그렇게 서서히 멎어 들어간다. 그 열병 속에서 엘리오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열병의 흔적으로 깊이 남아버린 흉터는 그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는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사랑이 끝난 후에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랑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들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다 보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의 열병은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열병이 남긴 흉터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엘리오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당신이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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