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5살의 나는 어른이 되면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아갈 거라고 믿었다.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학을 다니며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내가 꿈꾸던 드라마 작가가 되어 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라고. 모두가 내 드라마를 보고 열광하고 나는 선망의 대상인 '스타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인생 대역전을 꿈꿨던 여중생은 어느새 자라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학에는 가지 못했고 구멍 난 성적을 메꾸기 위해 4년을 허덕였다. '드라마 작가'라는 꿈은 접은 지 오래이고, 졸업 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온전한 직장을 갖는 것만을 바라게 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인생 대역전은 상상 속에서 꼬깃꼬깃 접혀 버렸다. 
  누구나 꿈꾸는 대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렸을 적 우리 모두에겐 '꿈'이 있었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꿈을 이루지는 못 한다. 그래, 적어도 포기한 나만큼은.(드라마 작가가 되기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그 이후로 다시 꿈꾸지 않을 것 같다.)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남들만큼 이뤄내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 속에서 24살의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된다.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 사실 앞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아, 모든 게 내 탓은 아니구나.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를 덜 힘들게 했을까? (p.70)

  '야매 득도 에세이'라는 재치 있는 부제를 가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 하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에세이다. 회사 생활과 일러스트 작업으로 바쁘게 살아왔던 그는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생활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생각들을 엮어 놨다. 여느 에세이들처럼 무작정 '힘내세요, 모두 지나갈 것입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마음을 툭- 건드려 '우울모드'로 전환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저 저자가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를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 담담함 속에 녹아 있는 작가 하완만의 일러스트들은 나를 심각하고 우울한 마음의 구덩이로 끌고 가는 것을 막아준다. 일러스트들을 보며 피식 웃게 되고, 고민은 가벼워진다.

 

 

 

 

 

 

 

이왕이면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꼭 뜨겁지 않아도, 강렬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일) 하면 되는 거니까. (p.163)

  생각해보면 우리는 열정과 노력을 강요하고 이를 미덕이라는 여기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반드시 꿈을, 그러니까 목표를 가져야 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고 배워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대학 입시'는 대부분 우리들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이룬 뒤, 우리들의 마음은 어땠는지.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하나둘씩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열정과 노력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내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었는지,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 하완은 온전하게 그 느낌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저 뭉근하게 원하는 일을 찾아가면 된다고 다독여 줄 뿐이다.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출 수만 있다면 좀 더디게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그렇다. 인생의 대부분은 시시하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삶이란 인생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런 시시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 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시시함을 긍정하는 <오구실>이란 드라마처럼.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와 나의 인생도 드라마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지금의 내 삶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p.244)

  내가 꾸준히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단편적인 모든 순간들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시시하다고 느꼈던 하루의 '단편'들이 모이면 나의 '장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을 즐겁고 소중하게'라는 나의 모토는 그렇게 생겨났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시할 수도 있는 인생이지만,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낸다면 결국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처럼 화려한 전체를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저 나는 천천히 내 속도와 방향에 맞춰 이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겐 즐겁고 소중하다.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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