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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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모든 것을 바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매일 훈련하고 고된 땀방울을 흘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상에 가까워지고자 하지만 나의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더 올라가지 못할 때. 누군가 당신의 귓가에 그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한다면, 설사 그것이 옳지 못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간혹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등 큰 스포츠 대회가 끝난 뒤에 안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린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들의 도핑 의혹에 의한 선수 자격 박탈에 관한 소식도 그중 하나이다. 도핑 이전까지의 노력들도 함께 물거품으로 만드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그들이 그저 안타깝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름다운 흉기≫는 스포츠 세계에서 민감한 문제인 '도핑'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 장편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항상 새로운 분야의 소재들을 전문가처럼 자세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는 스포츠와 과학이라는 분야를 접목시켜 흥미롭게 풀어낸다.

  자신에게 약은 도대체 무엇일까……. 쇼코는 거실에서 도쿄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영광을 가져다주었고 화려한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물론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다소 잃는 게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약과 만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p.357)

  일본 신기록을 보유한 전 올림픽 스타 유스케, 쇼코, 준야, 다쿠마는 외딴 저택에 숨어든다.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저택 안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저택의 주인 센도에게 들키게 되고 총으로 위협을 받던 그들은 우발적으로 센도를 죽이게 된다. 자신들의 범행 사실이 발견될까 두려웠던 그들은 저택을 불태우기로 결정한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불탄 저택을 수사하던 경찰들은 저택 안 비밀 창고를 발견하게 된다. 넓은 체육관과 누군가 살았던 흔적을 발견한 경찰들은 사라진 비밀 창고의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
  한편, 센도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타란툴라는 센도를 죽인 네 사람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그 누구보다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던 캐나다 출신의 육상 7종 선수인 타란툴라는 자전거 하나를 훔쳐 네 사람이 살고 있는 도쿄로 향한다. 네 사람이 숨기고자 했던 비밀은 영원히 감춰질 수 있을까. 타란툴라의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저 센도가 말한 대로 했을 뿐이야. 그녀에게 센도는 신이야.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고 있었겠지. 예전에 우리가 그를 믿고 약을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야. (p.275)

  유스케, 준야, 다쿠마는 자신들의 신체의 한계를 느꼈다. 최고가 되고자 노력했지만 이미 그들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런 그들에게 센도의 제안은 매우 솔깃했다. 체조선수의 꿈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를 대신해 선수가 된 쇼코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머니에 의한 선택이었다. 시작은 어머니의 욕심 때문이었지만, 최고가 된 쇼코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그녀의 삐뚤어진 욕망을 만들어낸 것도 그녀의 어머니였고, 그 욕망이 비극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예감했던 것도 그녀의 어머니였다. 네 선수들은 센도의 특별한 약물 덕분에 도핑 테스트에서도 의심받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도핑의 부작용이라면,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평생 지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가 늘 알고 있는 약물에 의한 도핑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도핑을 하나 더 알려준다. 센도가 시도했던 인체 개조. 즉, 여성의 신체가 가진 특성을 이용한 도핑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센도의 삐뚤어진 욕망에 의해 타란툴라는 태어나게 된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주인공 앨리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탄탄한 몸과 체력을 가진 그녀는 화려한 액션들을 보여준다. 센도의 비밀병기라는 별명을 가진 타란툴라는 굉장히 강해 보이지만, 그녀에게도 아픔은 존재했다.

  얼마 후 그녀는 방구석에 놓인 작은 침대로 돌아와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영원히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짓누르지는 않았다. 이 방에 갇혀 있는 것이 지금까지 그녀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문이 열린다. 그렇게 믿었다. 그가 죽은 지금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p.37)

  삐뚤어진 욕망의 끝에는 비극만이 남아 있었다. 과거를 감추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좋지 못했던 과거를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욕망에서 태어난 비극적인 그녀에게는 상처로 얼룩진 삶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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