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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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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다.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다. [기독교 강요]의 저자이자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신학자 칼빈은 알고보니 순 쫀쫀한 샌님에 사상적인 양아치에 불과했고, 칼빈의 손을 잡고 지상에 신정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스위스 제노바 시는 그런 칼빈에게 속아 종살이를 한 것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니 적당히 신학을 공부한 신학도나 목회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십중팔구는 화가 나서 책을 집어 던져 버릴 것만 같다. 아니면 교회에 모여서 이 따위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고 금서로 지정을 해버릴 지도 모른다.

 

칼빈이라는 신학자가 개신교 내에서 가지는 무게감과 중요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로 부터 시작된 종교혁명의 열기는 칼빈이 없었다면 아마 중심을 잃고 시들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로 인해 종교개혁자들은 신학적인 구심점을 가지고 탄탄한 교회를 비로소 세울 수 있었으며, 카톨릭 교회와의 끊임없는 신학적인 논쟁에서도 칼빈이 없었다면 개신교는 확고한 자기 진영을 구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대 신학자를 한낮 병적인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잔인한 독재자 정도로 묘사해놓았으니, 모르면 몰라도 칼빈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분노하거나 혹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초판은 1936년 독일에서 채 읽히기도 전에 압류되었고, 프랑스어 판이 출간된 뒤로는 칼빈파로 부터 신학적, 정치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만도 하다. 왜냐하면, 비록 칼빈으로 인해 개신교 초기의 사상적 억압이 있긴 하였으나 그것을 카톨릭의 지배로 인한 중세암흑의 역사와 비할 바는 아니었고, 칼비니즘이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을 종합해 보면 칼빈의 과오는 어떤면에서는 옥의 티, 혹은 새발의 피 정도로 치부할 수 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빈의 잔인함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스텔리오의 말 처럼 살인은 어디까지나 살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외친 기독교 사상의 대부가 기껏 사소한 교리차이 때문에 백주대낮에 불법으로 사람을 태워 죽이다니. 그런데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칼빈의 그 무자비한 살인이 칼빈의 말 처럼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추잡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힌다.

 

탁월한 지성과 도그마와 권력욕이 빚어낸 결정체인 칼빈은 마치 괴물처럼 유럽의 자유로운 정신과 지성을 집어 삼켰고, 그리하여 지상에 신정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그 순결한 시도는 지상에 가장 잔인한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칼빈의 광기어린 권력욕에 대항하고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관용을 지킨 카스텔리오는 어둠 속의 등불처럼 환하게 유럽의 양심을 지켜냈다. 그는 세르베투스의 억울한 죽음을 은밀히 사주한 칼빈에게 용감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자신이 칼빈의 정치적 술수의 희생자가 되는 순간에도 끝까지 양심과 관용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은 그 시대의 거인이었다.

 

전체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차후에 연구해 봄 직한 주제도 있으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카스텔리오와 칼빈의 대결은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종교 갈등에 시달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칼빈과 카스텔리오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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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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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여행. 말만 들어도 설레이지 않는가? 언젠가는 배낭하나 둘러 매고 모든 마음의 짐을 버려 놓은 채,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훌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할 것이다. 굳이 행복을 찾는다는 목표가 없어도 여행은 그 자체로 너무나 설레이는 것이다. 하물며, 진지한 자아성찰의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 모두를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만들어서 세상을 맑은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른다. 

 

이 책 속에서 꾸뻬씨가 그렇다. 프랑스 파리의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 꾸뻬 씨는 자신이 환자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각성과 함께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다소 낭만적인 결심을 한다. 이 책이 자전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아마도 저자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여행 길에 오른 꾸뻬 씨는 마치 어린 왕자가 된 듯이, 감상적이면서도 단순한 언어로 세상을 묘사한다. 처음 만난 노승과 친구 뺑쌍, 그리고 아름다운 중국 여성 잉리 등 만나는 인물의 삶과 생각을 표현하고 관찰하는 시선이 정신과 의사의 분석이라기 보다는 그저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한 소년의 시선고 오히려 닮아 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주인공은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행복에 관한 아주 소중한 배움들을 수첩에 잘 기록해 둔다. 그 배움의 내용들은 어쩌면 행복에 관한 수 많은 책들을 요약한 아주 집약적인 것들이고, 너무 단순해서 결론만 먼저 읽는 다면, 여타의 책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책은 복잡하고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년의 단순한 시각으로 풀어간다고 하는 남다른 특징이 있고, 그것이 이 책을 넘쳐나는 행복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무게감을 갖게 한다.

 

행복을 알기 위해 많은 공부가 필요할까? 주인공 꾸뻬는 병원의 책상에서는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없었던 것일까?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만, 어쩌면 행복은 아주 사소한 우리의 일상에 깃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의 시선이 너무 조잡해지고 복잡해져서 그 행복의 씨앗을 못본 채 지나가고 있을 뿐이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축하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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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만 2013-06-07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하는 나의 두 며느리에게 선물하기 위해 2권을 구입하여 기분좋다.
참 좋다.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 - 선대인연구소가 대한민국 오천만에게 답하다 선대인연구 1
선대인경제연구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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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소장의 신간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 시민이 읽기에도 쉽고 간결한 내용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경제적 문제를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말 어울리는 책이다. 

 

선대인 소장은 서민의 입장에서 때로는 상세하게, 때로는 강한 비판의 어조로 왜 이 시대에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며, 서민들이 맘 편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특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기업에 지배적인 구조로 편성되어 있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을 읽다보면, 서민들이 오히려 바른 지식을 가지고 사회에 대항해야 함을 통감하게 될 것이다. 

 

여러말 할 것 없이, 사회 생활을 하며 경제 활동을 하는 시민이라면, 반드시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흠이 있다면, 이미 다음 아고라에 올라있는 선대인 소장의 글과 너무 유사해서, 좀 더 새로운 정보를 바랬던 독자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과, 책과 상관없이 선대인 경제연구소의 유료회원 가입비가 좀 비싸다는 ..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선대인 연구소가 초심을 잃지 않고, 규모의 연구소로 성장하여 늘 서민을 위한 올바른 안목을 제시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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