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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어느날 우연히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에코에 대한 나의 숭배도 시작되었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논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리소설도 아닌, 기막힌 긴 이야기를 읽으면서 원전에 대한 감탄은 물론이거니와 이 미로와 같은 복잡하고 치밀한 소설을 우리말로 맛깔나게 우려낸 번역가에 대한 탄성과 부러움이 한동안 내 마음에 떠나질 않았다.
에코가 쓴 책을 하나씩 읽으며 즐거운 지적 사치를 누릴 무렵, 그동안 읽던 책들을 잊게 만들만한 또 한권의 책을 만났는데, 그것이 바로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는 내내 나를 가만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고,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페이지 마다 서린 '자유'에 대한 깊고도 날서린 향기. 조르바를 알고 새로 태어나지 않는 다면, 애초에 그것은 인간이 아님이 분명했다.
인류 문학사에, 적어도 최근 백년 내에서는 기념비적임에 틀림없을 두 권의 책을 번역한 이가 '이윤기'라는 사실은 또 한번 이 대단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대단한 행운아에다 언어의 귀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비밀스럽고 드문 언어의 꽃을 재배하면서 세상이 구사하는 것과 밀도가 다른 언어의 유희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리라,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번역가로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을 때도, 내 머릿 속에는 수십권의 사전에 둘러싸여 돋보기로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받아야 할 사람에게 마땅한 상이 돌아갔구나 여겼다. 마침내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대단한 학자가 한분 떠났구나 하는 아쉬움과 그 뒤를 이을 번역가는 누가 될 것인가하고 잠시 궁금해했었다.
나는 이윤기라는 사람의 내면은 몰랐다. 다소 내 관심 밖이기도 했거니와, 번역가들이 가지는 마음 속 전쟁을 애초에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윤기의 생전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아쉽고 아쉽다. 처음 이윤기라는 거대한 번역가이자 소설가의 얼굴을 맞딱드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책은 그의 숨은 얼굴을 조금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얼굴이 그가 세상에 보여주던 대부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에세이를 읽다보니, 그도 역시 자유를 갈망하고 만끽하던 조르바였고, 수도승 윌리엄 처럼 종교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지성으로 탐사하고자 했던 지식인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없이 겸손했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한없이, 너무 지나치게 겸손했다.
좀 더 적나라하게, 신랄하게 자신이 아는 것과 마뜩치 않은 것들에 대해 늘어놓지 않는 그의 겸손함이 아쉬웠다.
그가 번역하고 창작하며 틈틈이 남겨 놓은 이 에세이들은 그래서 집중해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하나 겸손했던 대가는 쉽게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중간 중간 예외적으로 밝힌 스승들과 서적들을 따라가며 고뇌와 성장의 여정을 짐작해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