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만이 남아가는 11월 요즘,
항상 추위에 떨며 우울했던 내게 충만함을 가득 채워준 책하나를 만났다.
나무라는 생물을 의인화하여 할아버지밤나무가 어린 작은나무에게 들려주는 나무들의 이야기..
만약 이것이 나무의 입을 빌려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책이었다면 무슨 나무가 사람을 대신한다는 거야, 하며 읽는 즉시 잊어버렸고 결코 충만하거나 행복해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성장소설이지만 나무의 성장소설이고 나무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
그러면서도 읽는 사람이 그 읽은 만큼 자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할아버지나무가 자신이 민둥산이 아닌 작은집 부엌귀퉁이에 심어졌다는 것을 이야기 할때만 해도 밤나무이야기인가? 시큰둥했지만 백년이된 할아버지나무가 가시가 가득한 열매를 맺으면서도 사람이 사는 집옆에서 온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아들과 손자나무의 성장, 그 집 주변의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어린나무에게 들려주는 나무이야기들,
한겨울 눈을 맞으면서 꽃을 제일 먼저 피우는 매화나무의 고매한 기상과 어린부부가 자신의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힘들게 삼고초려로 얻어온 자두나무 이야기, 어치의 건망증으로 도토리나무로 무사히 자라나 그들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참나무 이야기, 잎을 제일 늦게 피워 게으름뱅이로만 알고 있던 대추나무가 일년에 세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다른 나무들이 요란스럽게 꽃과 잎을 피울때 꾹 참고 자기시간을 기다린 대단한 인내심의 나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종이를 공급했던 닥나무의 쓰임까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여러나무들의 특색을 이야기 하며 그 나무들의 독특한 꽃들과 그 피어나는 시기를 너무나 예쁜 문체로 표현한것은 그림이 없어도 눈이 환해지는 느낌, 그 모양들이 그려져 행복하기까지 했다.
어느 식물도감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어쩜 우리곁에 있는 나무라는 것이 그렇게 다양하게 쓰이며 다양한 계절에 다양한 꽃과 잎과 열매를 맺는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과실나무들의 삶은 도시에 갇혀 인간들의 이기심에 젖어 오직 나만 생각하던 나에게 나뭇잎 하나, 가지하나, 열매하나가 맺히고 떨어지는 그 심오한 세계를 알려주며 그냥 모르고 지나칠 나무들의 세계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들게 자랐으며 고마운 존재인지를 이 책을 통해 알았다.
200페이지가 못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사랑과 애정이 가득하게 적었을까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작가가 직접 자신의 시골집에 있던 밤나무와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로 들려주었기에 그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쓸때 자신의 경험이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고 했는데 이 책은 그것에 가장 부합하듯 작가의 그 고향집과 나무들에 대한 사랑과 진솔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린 부부가 자신들이 키운 나무의 모종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손들에게 남겨주었듯 나 또한 이 예쁘고 작은 책을 내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읽히도록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일었다는것,
올해의 가장 좋은 책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소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