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녀기를 훨씬 지났음에도 이런 아련한 제목을 만나면 방황하고 우울했지만 그 시절의 가능성으로 인해 가슴설레이는 나를 보면서 혼자 웃기도 하는데 '비밀의 부채'라는 신비함까지 더해지니 그 궁금증이 증폭되었다고나 할까..
리사 시라는 작가가 참으로 낯설었지만 중국의 근.현대 문학이 우리에게 들어온 시기를 생각한다면 그런 것 쯤이야 문제도 아니라고 넘길 아량이 생긴지 오래다.
 
처음 5살난 나리라는 계집아이가 자신의 일상에 대한 넋두리를 적은 첫 부분을 보면서 5살난 아이가 뭘 안다고 이렇게 적었지?라며 황당해 자칫 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을 뻔 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시대 그 나이의 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기 위해
전족(纏足)을 준비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몸서리 쳤는지..
소녀도 아닌 아이들의 발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아니 엄지발가락만을 남겨두고 모든 발가락이 부러져 7cm정도의 연꽃모양(金蓮)을 닮은 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하다가 죽은 여자가 10분의 1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그 어미가 딸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손수한다니 현재를 사는 우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시대엔 자신의 발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참아낸 여인의 발은 시댁에서 보면 출산의 고통뿐 아니라 어떤 불행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자제심과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했다니.. 그리고 친정어머니에게 순종한 표시며 발이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읽고야 그 끔찍한 고통을 감수하는 여자들을 조금이나 이해했지만 그래도 미쳤군 미쳤어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나이에 누구나 전족을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나리와 설화가 의자매를 넘어선 평생의 결속 '라오통'의 관계를 7살에 맺게 되므로써 이 책은 한 개인이 아닌 두 여자의 일생과 평생의 우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평범하게 자란 나리와 부유한 집에서 자유와 여행을 즐기며 자란 설화가 전족과 결혼을 전제로 맺어진 친구가 되면서 서로가 겪지 못했던 일상의 일들을 나누고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 시대 여성들의 글자라는 누슈를 이용해 부채 혹은 수건에 편지의 글등을 주고 받으며 그녀들은 자라고 결혼을 하게된다.
 
누군가 말했다. 여자의 인생은 뒤웅박이라고..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가 그야말로 모범적인 며느리, 아내가 되면서 자신 또한 높은 지위의 루마님이 된 나리와 아버지의 아편과 가정의 몰락으로 백정에게 거의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게 되어 아이 세명을 죽음으로 잃게 되어도 그 삶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던 설화의 삶, 그녀들이 어린 나이에 맺어진 친구 사이임에도 서로간의 다른 환경으로 벌어진 틈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시집간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날 수 없었기에 그들만의 누슈글자로 주고 받았던 부채 속 은밀한 대화들은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의 확인과 표현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잘못 해석된 내용들로 인해 생긴 오해로  설화에게 사는 의미의 전부였던 나리의 돌이킬 수 없던 외면. 설화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그녀의 힘겨웠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된 나리의 죄스러워하는 고통을 누가알까?
어렸을때부터 삼종사덕을 교육받은 여인들의 어쩔 수 없이 살아내어야 하는 삶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알아야겠다.
똑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나와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생기는 오해와 후회가 없기
위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것이며 내가 좀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친구와 사람들에 대한 나의 노력아닐까.
 
제목 따지기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여든살이 된 루마님의 인생 회고록이니 중국판 '여자의 일생'이군 하다 일순
내게 가장 큰 충격으로 왔던  전족을 하는 부분을 따와 '금련'이라고 붙일까 혼자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작가는 닫힌 중국 속 여인들인 설화와 나리의 우정을 더욱 부각시켰고 이 책을 읽으므로써 옛 여인들에게도 이런 깊은 우정이 있었구나 하며 내 멀리 있는 친구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서로가 별말은 안하지만 그리워하는 사이, 나 또한 부채는 아니지만 그 감정을 편지로 전하고 싶은 충동을 어찌나 느꼈는지..
더불어 책 읽는 내내 발가락에 온 힘을 주어보며 어떻게 생발가락 뼈를 부러뜨릴 수 있지 또 그 고통은 얼마나 아플런지 하며 오늘날 태어난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작가가 19세기 중엽 닫힌 중국 여성들의 모습과 삶을 어쩌면 감정적으로 치우칠수도 있는 내용들을 여든 루마님의 입을 통해 참으로 담담하게 적은 것이 내가 비평을 하고 단순히 책 읽는 행위를 하는 독자가 아닌 나리가 되고 설화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어지는 책.
처음으로 접한 '리사 시'라는 작가에게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내 마음을 항상 잘 알았던 너는 이제 했빛 따스한 구름 위를 날고 있네.
나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네.'(2-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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