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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평점 :
일 하다 도저히 이 곳에 몸담을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자니 당장 이번 달 공과금이, 끼니를 때울 돈 한 푼이, 신용카드 결제 대금이 막막하고, 사고 싶었던 것들을 포기해야 해서 눈물을 삼켜본 경험이 있는가? 연달아 이어지는 야근, 어처구니없는 대우, 참을 수 없는 모욕이나 괴롭힘에도 이를 악물고 모른 척, 참아 넘겨본 적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이 책을 쓴 윤지영 노동인권 변호사를 알게 됨을 추천한다.
노동인권 변호사로 근무하며 그간 겪었던 다양한 판례와 사건을 다루는 책이다. 법 집행과 그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싸우며 지나온 사람의 애틋함과 위안이 담겨있다. 입주민의 폭언과 괴롭힘에 못 이겨 주차장에서 분신자살을 택한 경비원, 14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지만 ‘프리랜서’로 고용되었다며 회사와의 소송에서 패소 후 숨진 PD,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했더니 하루 만에 회사에서 내쫓긴 파견직 근무자들, 하루 일당을 사비로 채워가며 일해야만 했던 택시 기사들,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고등학생, 대학생 실습생과 지금도 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으며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모두 내가 알지 못하고, 어떤 사건은 뉴스 기사로만 접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그들은 나한테 ‘완벽한 타인’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전력을 다했던 저자가 설명하는 그들의 노고와 진실한 상황을 접한 후엔 ‘긴밀한 타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법의 사각지대, 노동의 그늘은 누구에게나 드리울 수 있으니까.
마냥 아픈 현실, 부조리함을 논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수임료를 받지 않고 기꺼이 대리인을 자처하며 승소했던 과정을 밝히기도 하고, 노동자가 모를 수밖에 없는-변호사와 헌법을 전공하는 교수도 몰랐던-법률과 명령을 친절히 설명하고 논리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너무나 친절한 판례 설명서 같다는 생각하다, 문득 이렇게까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고 자세하게 서술한 이유는 혹여나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같은 상황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 아닐지 추측해 보았다.
작년 12월부터 피로하게 지속되는 탄핵 심판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또 한편으론 역사에서 이처럼 시민이 노조와의 연대를 기꺼워하는 경우도 없었다. 에필로그에서 윤지영 변호사는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혼자는 약하지만 노동자들이 힘을 합칠 수 있다면, 파업을 무기로 쌍루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고 억울함과 착취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힘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야말로 뭉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283
사실 우리 모두 노조의 필요성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다만 개인의 상황에 따라 노조와 연대하는 게 어려울 수도, 오히려 노조가 사측과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저자는 첫째,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법이 규명한 근로조건 외에도 노사 간에 교섭이 필요한 모든 사항에 대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쟁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둘째, 기업별노조가 아닌 산업별 노조로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나 또한 회사에 속한 노동자로서 나와 함께 연대하여 부당한 대우를 겪었을 때 힘을 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말 잘 통하는 동료 한 명만 있어도 살 만하다고 느끼는데. 나와 함께 투쟁하는 단체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그 모든 연대와 투쟁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 온 윤지영 변호사의 책을 모두가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