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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으로 혼자 놀기 -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1년
현새로 지음 / 길나섬 / 2017년 4월
평점 :
[서평후기] '인문학적으로 혼자 놀기'
- 현충사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 1년 동안의 기쁨 -


지은이 : 현새로
펴낸곳 : 길나섬
발행일 : 2017년 4월 28일 초판1쇄
도서가 : 15,000원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어제도 '인문학'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 보긴 했는데 여전히 그 의미가 헷갈리기에 다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문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인문학'은 "근대과학에 대해 그 목적과 가치를 인간적 입장에서 규정하는, 인간과 인류 문화에 관한 모든 정신과학을 통칭"한다고 합니다. 이 말에 따름 인간과 관련된 모든 학문은 모두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인간과 관련되지 않은 학문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읽은 도서는 <인문학적으로 혼자 놀기>라는 책입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요. 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딱 부러지게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동양 인문학의 3대 조류인 문학·사학·철학의 방법론과 유사하게 어느 특정한 것에 대해 홀로 관찰하고 조사,분석하고 연구,종합하면서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에게 있어서는 그 특정 대상이 '현충사'였인 것 같구요.

책은 일반적인 도서들에 비해 조금 큰 양장본(Hardcover)의 도서로 포토북이나 전집에서 많이 사용되는 고급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더욱 돋보이구요. 더우기 겉표지까지 독특한 컨셉으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사진과 글을 투명 아크릴필름에 전사하여 그 필름을 책표지에 덧씌웠는데요. 필름을 벗겼을 때와 씌웠을 때를 비교해 봄 완전 다른 느낌의 책이더랍니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책 소개 사진으로 봐서는 그 느낌을 전혀 알 수 없는,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의 제작 방식이라 여겨지네요.



저자는 현재 작가이자 사진가로 활동 중인 분으로 학창시절 세계일주를 꿈꾸었던 꿈많던 소녀이었답니다. 대학 졸업후 직장에 다니다가 마지막 월급을 털어서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는군요. 그 이후로 10개국, 30여개 도시를 여행하고, 국제적인 이사도 여러번 하셨다니 세계를 내집 같이 여긴다는 코스모폴리턴과 같은 이미지도 느껴지네요. 저자가 집필한 책 중 "인도,신화로 말하다"와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를 이미 읽어 보았는데, 그 책들에 수록된 사진과 글들, 특히 에세이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보아서 이 책도 별다른 고민없이 구해서 읽게 되었죠.

책은 '프롤로그'와 '16장의 본문',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수록된 글과 사진들이 제 마음에 쏙 드네요. '본문'에서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저자가 현충사에 가서 보고, 느끼고, 체험한 소회들, 그리고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풀어낸 에세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자기의 삶을 투영해 보게 하는, 그런 글들이었어요.

현충사는 충청남도 아산에 자리하고 있는 왜란이라는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풍전등화의 상황을 타개해 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책 뒷표지에 쓰여진 글에는 저자가 이 곳 현충사를 1년에 걸쳐 매주 한번씩 찾아갔었다는군요. 그 곳에 가면 존경하는 장군을 만나고 많은 기쁨들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순신 장군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할 정도라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죠.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현충사에 그렇게 자주 가게 된 건 좀 더 깊은 이유가 있었더군요..

책의 시작은 현충사의 사진들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현충사의 모습이 이랬었나 싶었어요. 가본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저도 조만간 이곳에 방문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프롤로그. 혼자 놀다>로 이어집니다.

'프롤로그'는 '혼자 놀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와 과정,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들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으로 셜록 홈스를 예로 들고 있는데, 사건을 철저히 관찰하고 조사하기 위해서는 혼자 놀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선현들이 글방에서 홀로 서책을 끼고 인문학(문·사·철)에 파고 들을 수 밖에 없었던 현실도 예로 들고 있구요. 이제부터라도 혼자 놀아 보고 싶다면 은근과 끈기를 갖추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혼자 노는 사람을 대인관계나 사회성에 문제있는 사람 취급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덕후(오타쿠)'라 하여 오히려 주목받고 존중받기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혼자 노는 방법을 어느정도 터득해야 하지 않냐고 합니다. 맞는 말이죠.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은퇴하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 혼자 놀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될테니까요.

'본문'은 "그날이 오다"로 시작됩니다. 목차에서 제목을 봤을 땐 여성으로서 힘든 시기라는 폐경기를 말하는 것으로 지레짐작했었는데요. 그게 아니라 자녀가 성장하여 부모로부터 독립하려 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오는 날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마, 오늘 늦게 늦게 와, 알았지?". 흐흠.. 제게도 물론 이날, 왔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요.. "아빠, 나 용돈만 주면 돼~". 다시 생각해보니 참 슬픈 현실이네요...

저자는 '현충사'가 위치하고 있는 '아산'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랍니다. 옛 지명은 '온양'이었다네요. 지금껏 온양온천과 아산온천이 다른 곳이라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같은덴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저자는 고향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가 바로 이 '현충사'였다고 합니다. 몇년 전 아이와 현충사에 갔을 때 현충사를 소개하는 책자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직접 그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일단 시작한게 무조건 일주일에 한번씩 현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는군요. 그래서 1년 동안 매주 한번씩 현충사에 방문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현충사에 갈 때 거의 고속버스를 이용하셨나 봅니다. 버스전용차선으로 쎙쎙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느끼는 기분을 묘사한 글귀는 공감 100%였습니다.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 타고 현충사까지 가면서 마주하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글과 사진들이 개인적으로 무척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현충사 옛집에 있는 은행나무가 특히나 가을을 먼저 맞이하여 유독 먼저 단풍이 든다고 하는데요. 지금 때이른 불볕더위로 무더위 속에 있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은행나무의 노란 색감에서 깊어져 가는 가을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저자는 현충사를 1년에 걸쳐 매주 갔었기에 그곳의 사계절을 담아 글과 함께 이 책 한권에 온전히 수록하였습니다. 사계절을 보여주는 꽤 많은 사진들 전부를 올릴 수는 없고 일부만 올려봅니다.




현충사의 곳곳을 1년에 걸쳐 다니면서 기록 남기었는데 꼭 그곳만을 간 것은 아니었더군요. 아산시 음봉면에 자리한 이순신 장군 묘, 저자의 종가가 자리한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이순신과 현덕승이 교유하던 곳이라 함), 이순신 장군의 옛 집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맞이한 곳 등이 나옵니다.


현충사에 가면 꼭 '충무정'의 우물물을 마셔보라고 저자는 권하고 있습니다. 수백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청정한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라면서요. 이순신 장군이 매일 마셨을 그 물을 지금 우리가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졌답니다. 문화재 유적지에 있는 우물들은 대부분 말라 붙었거나 오염되어서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현충사의 '충무정'은 당시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사용가능한 우물이라니 무척 드문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책 본문에 수록된 사진 중에는 눈에 익은 것도 있었습니다. 에코백을 감나무에 걸어두고 촬영한 사진인데요. 에코백에 새겨진 사진이 앞에서도 말했던 인상깊게 읽었었던,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 책자 표지이기 때문이죠.^^

'에필로그'는 여느 에세이와는 좀 다르게 쓰여져 있습니다. 보통 앞에 쓴 글들에 대한 요약 총정리인데 반해, 이 책은 그런 내용 없습니다. 부제인 '엄마를 위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주된 내용인데요. 저자의 모친은 20세에 4남3녀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대가족의 일상을 책임지느라 평생동안 노동에 치여 사신 인생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저자는 엄마의 인생을 '고통의 바다' 그 자체라고 할 정도니까요.. 2017년 설날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정정하셨던 엄마가 폐렴으로 앓아 누우셨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갑작스레 돌아가셨답니다.. 현충사의 마지막 방문은 삼우제를 지내기 위해 선산이 있는 아산으로 가면서 가게 되었다는게죠.. 마침 남편도 같이 있어서 남편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편하게 갔는데 일 마무리 잘하라는 뜻으로 엄마가 준 마지막 선물이라 여겨졌답니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은 난중일기 내용 중 어머니 부고 부분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됩니다. "이 책을 엄마에게 바친다."

책의 마지막은 현충사에서 담은 4장의 사진으로 마무리되는데요. 뒤의 2장을 보면 사계절을 표현한 것도 같지만 앞의 사진은 봄여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게 그건 아닌것 같네요.



한 사진가의 에세이 겸 사진집이라 할 이 책은 여러모로 독특한 구석이 많습니다. 독특한 외형에서부터 고급스런 내지, 인생을 살아오며 체득한 작가의 삶에 대한 시선과 아름다운 현충사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 등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고택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런 느낌을 받게 되는 책입니다., 이게 바로 인문학적으로 혼자 놀아서 얻게 된 결과물인가 봅니다.ㅎㅎ 아산이라는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외지를 1년에 걸쳐 매주 한번씩,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간다는 것은 은근과 끈기, 그리고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물론 저자분의 고향이란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일년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렇기에 현충사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한두번의 방문으로는 건질 수 없는 정경이니까요. 사진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고, 책(에세이)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책을 당연히 좋아할 겁니다. 저 역시 그러하니까요.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신, 그런 분들께 추천드리고픈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