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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눈 서양의 눈
박우찬.박종용 지음 / 재원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리뷰] '동양의 눈 · 서양의
눈'
- 우리는 미술을 읽는 눈을
잃었다 -


공저 : 박우찬,
박종용
발행처 : 도서출판
재원
발행일 : 2016년 7월
30일 1판1쇄
도서가 :
15,000원

인류가 탄생한 이래 미술은 인류와 함께
해왔다고들 합니다. 동굴벽화나 암각화를 통해서 고대 인류도 그림을 그렸었다는 걸 알 수 있기에 그렇죠. 그런데 그 그림들은 제사나 축원을
목적으로 그려졌을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것일까요? 동양과 서양에 전해 내려오는 미술품들을 보면 그 내용이나 분위기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건 또 왜 그런걸까요? 그러한 의문점에 대해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동양의 눈, 서양의
눈>이라는 책자이죠. 최근 들어 미술 관련 서적을 많이 입수하여
읽고 있는데요. 지금 후기 쓰려는 책 말고도 3권의 책자가 더 있습니다.ㅎㅎ 이 책 도서 제목을 봄 동양과 서양에서 미술에 대한 시각 차이를
분석 설명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요. 그것들이 포함되긴 하지만 읽어보니 그것보다는 더 포괄적인 내용들을 설명해 주고
있더군요.~

책은 2분의 공저로 집필되었습니다. 두분
다 미술을 전공한 분들로 두분의 경력들을 봐도 학예연구사, 큐레이터, 미술관장과 같이 미술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력을 보면 두분 다 서양미술이 전문인 듯 한데 동양미술에도 어느 정도 내공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책은 <서문 - 동양의 눈, 서양의
눈>, <Ⅰ세상의 눈은 하나였다>, <Ⅱ 객관적인 눈, 서정적인 눈>, <Ⅲ 측량하는 눈, 기억하는 눈>,
<Ⅳ 사실적인 눈, 사의적인 눈>, <Ⅴ 분석하는 눈, 표현하는 눈>, <Ⅵ 세상의 눈, 다시 하나가 되다>,
<후기 - 격물치지의 눈>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서양미술사를 설명하고 있고 동양미술은 부연 설명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분량도 서양미술이 훨씬 많은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었던 동양과 서양의
미술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물을 보는 방식의 차이라고 합니다. 원래 15세기 이전의 동서양의 미술은 하나였고 미술의 목표는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이었답니다. 15세기 이전의 동서양은 서로 비슷한 성격의 사회이었기에 보는 눈이 서로 같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현실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미술을 추구하게 되면서 동서양간에 조금씩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양은 화가 개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감정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이도록 묘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동양은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여
서정성이 강한 주관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종국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미술이 되었다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1427년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에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서양미술이
탄생하였답니다. 기하학과 수학을 이용한 원근법을 적용하여 미술역사상 최초로 객관적인 현실공간의
재현에 성공한 그림이라는 것이죠. 이 때부터 동양과 서양의 미술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사진이라는
훌륭한 기록매체가 있기 때문에 당시의 그림을 지금 시각으로 보면 별거 아닌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신기하고 혁신적인 화법의
그림이랍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그림 속 벽에 구멍이 뚫린 줄로 알고 무척이나 놀랐다고 했었다네요. 이후에 나온 1434년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는 리얼한 서양의 미술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항상 등장하는 적품이지요.


이 시기의 동양 역시 서양과 같이 리얼하게
그리는 화풍이었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그 시기의 그림인데,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본 신비로운 도원경을 화가 안견에게 부탁하여 그린 그림이죠. '반 에이크'와 '안견'의 두 그림을 비교해 봄 사실적
표현에 있어서 결코 서양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두 그림이 너무나 다르기에 그 사실적 표현법에 대해 비교 자체를 하지 못하겠더군요.
제 보기엔 '반 에이크'의 그림은 극사실주의의 사진 같은 그림이라면, '안견'의 그림은 주변을 생략한 풍경 그림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서양의 '객관적
현실의 재현'은 '투시원근법'을 통해 한걸음 진보하게 되었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누구나 다 아는
방법이지만 당시로서는 수학적 오차 없이 정확한 재현은 하지 못했었다는군요. 이것 역시 '그리드'라는 도구로 해결할
수가 있었답니다.
여튼 15세기 초에 시작된 르네상스 미술은 원근법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미술의 기초를 세웠고,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19세기 리얼리즘까지의 서양의 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심화시켰답니다. 한마디로 "원근법"이 서양미술사에서 4백년동안을
지배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19세기 초,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미술에서 원근법적 유효성은 부정되기 시작했고 더이상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미술은 그 효용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원근법은 현재에도 지도, 측량, 인공위성, 사진 등 여러 방면의 실생활에서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여전히 미치고 있답니다. 이처럼 서양은 정확한 측량을 위해 도구를 사용하여 보았지만 동양에서는 도구를 이용해 세상을 보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의 미술은 맨 눈으로 대상과 접촉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을 중시했다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서양과 동양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화는 끊임없이 대상을 관찰하면서 그림을 계속 수정해 가면서 그려나갑니다. 그래서 서양화는 몇 년에 걸쳐서 계속 고쳐 가면서
그려지는게 다반사이죠.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3년에 걸쳐 그리고도 와성하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 "모나리자"를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동양화는 순식간에 그려지는게 대부분이지요. 조선 중기에 활약한 김명국의 "달마도"는 몇 분만에 완성된 그림이라고 합니다. 동양화는 실체를
관찰하면서 그리기 보다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자신의 마음 속에 그려놓고 그 구상한 형상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추사시켜 그렸다는 것이죠. 이것은
붓으로 그리기에 앞서 뜻이 서있어야 한다는 "의재선필"이라는 동양화의 창작방법 중 하나랍니다. 이처럼 동양화는 마음 속에 미리 구상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데 그것은 먹과 화선지라는 재료적 특성에 기인한답니다. 서양화는 유성물감이라는 재료이기에 물감이 마르면 다시
덧칠을 하거나 떼어내서 수정할 수가 있지만 동양화의 먹은 한번 붓을 들게 되면 완성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이 그릴 수 밖에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죠.


서양미술이 추구해온 '객관적
현실의 재현'이란 목표는 사진(Photography)의 등장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답니다. 아무리 그림을 현실처럼 그리더라도 사진의 품질에는 당해낼 수가 없던게죠. 사진의 등장과 함께 서양 미술의 사실주의는
막을 내리게 되지만 그에 반발하여 현실을 사진같이 리얼하게 재현하겠다고 주장하는 "리얼리즘"이 등장합니다. 사진
역시 처음 등장할 때에는 컬러도 아니었고 촬영에도 장시간이 소요되는 등 약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리얼리즘을 주장한 화가로
쿠스타브 쿠르베, 장 프랑스와 밀레가 있었는데요. 그들은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여 냉정한 시각의 그림을 그렸답니다. 그것이 바로 "이삭줍기"와 같은 그림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사조도 사진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차 사그러 들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서양미술사에서는 더 이상 사진 같이 그리는 미술은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대신 형태 분석을 통한 새로운 사조, 추상미술이 등장했지요.

동양미술 또한 처음부터 서정적이고 주관적인
미술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랍니다. 중국의 미술사를 보면 춘추시대부터 한나라시대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림을 중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형태보다는 정신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특히 "사대부"라는 계층이 등장한 송나라 때부터는
정신과 마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매우 중시되었답니다. 그 이후로 동양미술의 목표는 "현실의 객관적 재현"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된 그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 되었는데, 그것은 신(神,
정신)이었고 신(神)을 그리는 것(寫)을
사의(寫意)라고 불렀다는군요. 사대부들은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券氣)"라 하여 사람에게 인격이 중요하듯 예술은 격조가 중요한데 이것은
높은 수준의 학문을 닦은 후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글씨의 조형성에서 풍기는 기운(文字香)과 학문과 독서를 통해서 얻어지는
지성미와 인품(書券氣)을 말하는 말로 웬만큼 수학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랍니다. 한마디로 수준미달인 자는 그림 그리지 말라는 소리죠..
여튼, 책에서는 이러한 사대부 같은 부류기 인류사에서 다시 출현하기 어렵기에 사대부들의 문인화들은 다시 보기 어려울 거라
합니다..


책은 서양과 동양의 미술사조가 어떠한
근본과 시각으로 시작되었고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렴풋하게 느꼈었던 동양과 서양 미술간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잘
정리할 수가 있었어요. "동양의 눈, 서양의 눈"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종국에는 크나 큰 차이로 이어지는
결과를 보니 마치 "나비효과" 같단 생각도 들더군요. 여러모로 흥미롭고 좋은 내용의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