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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전혜선 옮김 / 역사비평사 / 2016년 7월
평점 :
[도서후기] "과거 ; 중국의 시험지옥"
- 중국 수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청나라까지 이어진 관리 등용 시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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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미야자키 이치시다
옮긴이 : 전혜선
펴낸곳 : (주)역사비평사
발행일 : 2016년 7월 7일 초판1쇄
도서가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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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9월부터 2017년도 대학입학 수시전형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저 역시 고3 수험생 자녀들을 두어서 남의 일만은 아닌데요. 하지만 제 학창시절 때처럼 학력고사와는 전혀 다른 입학전형 방식인데다가 어찌나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지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뭐 세간에는 "조부모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입시 성공의 조건이란 우스개도 있다는데 위안을 삼아봅니다.ㅋㅋ 이러한 입시 지옥의 상황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제 생각엔 "과거제도"가 그 시초가 아닐까 싶었죠.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고려 광종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고 역사시간에 배웠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었습니다. 그러한 "과거"에 대해 사료와 연구를 통해 분석 해설한 책자가 일본에서는 오래전인 1945년도에 출간, 1963년에 증보 간행되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었답니다. 그 도서의 제목은 <과거 ; 중국의 시험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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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경희궁) ]
저자는 1901년 출생하여 1995년 타계한 일본의 동양사학자입니다. 이 분 역시 일본의 입시 지옥 현장을 목도하고 언제부터 "입시지옥"이란 단어가 쓰여졌는지 궁금했다고 하는데요. 그 자신은 입시지옥이란 단어를 뼈저리게 느낀 세대는 아니었지만 궁금해 알아보니 전후 대학입학이 어려워지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소학교, 소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유치원까지 연속해서 경쟁이 벌어지게 되면서 입시지옥이란게 생겼더랍니다. 일본은 패전이후 때 벌써 입시지옥이 시작되었었군요.. 아무튼 이 분의 저작물을 살펴 보면 주로 중국사가 많은 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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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머리말>, <과거제 흐름도>, <서론>, <시험공부>, <현시 ~ 제과>, <맺음말>, <후기>, <과거연표>, <해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들이 한편의 학구적 논문을 보는 것 같더군요. 중국의 과거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파고 들어 분석 연구하였고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집요함이 느껴질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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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인 587년에 처음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지방의 유력 귀족들이 주(州)를 단위로 지방정부를 형성했었기에 아무리 제왕의 권력이더라도 그들을 통치하기가 어려웠다는데 있답니다. 그러한 지방토착세력들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수나라의 문제는 지방관아의 고급관리는 모두 중앙정부에서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쳤다는데요. 그러다 보니 중앙정부에서는 항상 관리를 파견할 수 있는 관리 유자격자들을 보유할 필요가 생겼고 그를 충당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과거제"랍니다. 이 제도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제도개혁이었다는군요. 당시까지는 신분세습이 당연시되는 봉건사회였기에 과거제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죠. 물론 노비와 같은 하층계급은 대상이 아니었고 일반 양민이 과거를 통해 중앙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과거제를 통한 입신양명의 문호는 좁아지고 경쟁은 더욱 심해지게 되면서 합격의 판가름에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되었답니다. 같은 능력을 가졌더라도 부자집안 또는 지식계급 집안의 자녀가, 변두리보다는 문화적으로 앞선 대도시에서 자란 자녀가 훨씬 유리하더라는 얘기죠.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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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핵심 내용은 책 앞부분에 나오는 한장의 도표로 <과거제 흐름도>가 그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도표를 다시 찾아 보니 그 흐름이 한 눈에 팍 들어오네요. 핵심사항을 이렇게나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요약한 걸 보면 저자분도 수험에 대한 내공이 보통은 아닌신 듯 보입니다.ㅎㅎ
"과거"는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학교시(學校試) 또는 동시(童試)>와 <과거시(科擧試)>로 구분됩니다.
"학교시"는 원래 "과거"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이지만 명나라때부터 과거에 앞서 치르는 예비시험과 같은 성격으로 추가된 것이라 합니다. 이 시험은 국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으로서 여기에는 현에서 치뤄지는 "현시(縣試)", 부에서 치러진 "부시(府試)", 본시험이라 할 수 있는 "원시(院試)"의 3단계 시험을 거쳐 "원시"에 합격하면 <생원(生員)>이라는 관리에 준하는 학생 신분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원을 대상으로 치루는 학력시험 성격의 "세시(歲試)"라는 시험이 있었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교시>가 바로 지금의 "대학입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시"는 바로 관리 등용을 위해 학교에서 양성한 인재중 선발하기 위한 시험을 말한답니다. 송나라 이후 "과거"는 3단계 형식이었다는데요. 지방에서 "향시(鄕試)"를 치르고 향시를 통과한 자들을 모아 중앙정부에서 "회시(會試) "를 실시한 다음 천자가 직접 주관하는 "전시(殿試)"에서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결정했답니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서 이 3단계 본시험에 딸린 소시험이 계속 추가되면서 청나라때에는 7단계나 되었다네요. 아무튼 "향시"에 합격하면 "거인(擧人)"을, "회시"에 합격하면 "공사(貢士)"을, "전시"에서 합격하면 "진사(進士)라는 학위를 수여받는다 합니다. 이 <과거시>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가고시"와 같은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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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인구 대국답게 과거의 규모도 TV 사극에서 보던 우리나라의 과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인 것 같습니다. 책에는 각 단계별 시험장소에 대한 내용 설명과 함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시험장이 무슨 거대 농장 인삼밭 같아 보입니다.. 이러한 "과거시" 수험장을 "공원(貢院)"이라고 하는데요. 각 성의 성도에 상설 건물이 있는데 그 "공원"안에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독방이 벌집처럼 수만개가 모여 있답니다. 위에 나오는 우리나라 과거제 시험장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죠.. 게다가 공원에 한번 들어가면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도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밥을 지어먹어가며 답안지 작성을 했다네요. 더욱 놀라운 것은 시험중에 급사하는 거자(수험생)이 발생하면 시체를 거적에 말아 담장밖으로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만 이정도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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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검사장에까지 오른 진모 검사장이 부패혐의로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부패의 실상이 참 놀라울 뿐인데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데다가 공직자 해외연수중 하버드대 로스쿨 수료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 더구나 검사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자만이 갈 수 있다는 주요 보직들을 두루 거친 사람이라던데... 참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책에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는 연유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를 위한 수험의 기본은 "암기"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천자문"에서부터 "사서오경",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집, 경전들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교본삼아 시나 문장을 잘 지어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는거죠. 그러다보니 인성의 함양보다는 지식과 수험의 요령만을 터득한 자가 합격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인물됨됨이나 품행은 개차반이더라도 시험만 잘보면 관료가 될 수 있었다는게죠. 그들중 일부가 자신은 수백수천만명 중에서 선발된 엘리트라는 의식과 함께 자기가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부패관리들이 점염병처럼 점차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관리들은 그러하지 않았겠지만요...
이래저래 "과거"라는 책을 읽고나니 여러가지 주변 상황들이 대입되어 생각하게 되네요.^^ 이 책은 읽어 보면 "과거"에 대해서는 더이상 검색해 볼 필요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중국의 과거제를 일본의 학자가 조사,연구,분석,해설한 내용이기에 우리나라 고려,조선시기의 과거제도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과거'란 제도의 기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궁금하신 분은 이 책 읽어보심 만족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