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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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

앤 마크스 著, 김소정 譯 / 북하우스 刊 / 479 page

지은이 : 앤 마크스(Ann Marks)

옮긴이 : 김소정

펴낸곳 : (주)북하우스 퍼블리셔스

발행일 : 2022년 8월 4일 1판 1쇄

도서가 : 32,000원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되고 된 포토그래퍼 중 한명입니다. 2014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던 사진작가였지요. 생전에는 그녀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고 그녀 사후에 존 말루프가 시카고 경매장에서 그녀가 촬영한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을 구입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영화는 전편을 보진 못했고 공중파 방송에서 영화 소개하는 내용만 슬쩍 보았는데 그녀는 어떤 작품을 남겼길래 그렇게나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었지요.

그런데 도서카페에서 비비안 마이어 서평단 모집이 있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궁금해 했던 전 당연히 응모했고 다행스럽게도 선정되어 책자 입수하게 되었어요. 책 안에는 그녀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었고 그녀가 남긴 사진들도 꽤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한건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무척 많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그녀를 셀카의 원조라고 칭하기도 한답니다. 어쨌든 다른건 몰라도 그녀가 촬영한 사진 중에서 인물사진들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녀가 거리에서 촬영한 인물사진들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정말 놀랍다고 여겨집니다. 그녀가 주로 사용했던 카메라가 위에서 내려보게 되어 있는 뷰파인더인 롤라이플렉스라는 점도 많은 부분 영향이 있는 것 같구요.

이 책의 원저자는 뜻밖에도 마케팅 경영자로 근무했다는 여성입니다. 30년 동안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했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최고 마케팅 경영자로 일했답니다. 저자는 기업에서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해 온 경험을 살려 미스테리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고 이 책을 집필하였다네요. 흐흠.. 인물 평전을 다수 집필했던 사람이 이 책 썼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저자에 대해 궁금해져 검색해 보니 아카데미 다큐멘터리부분 노미네이트되었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2014년 보게 되었는데 비비안 마이어의 성격과 그녀가 촬영한 사진에 매료되어 그녀의 삶과 작업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밝혀보고자 마음먹게 되었답니다. 저자는 비비안 마이어의 전체 아카이브에 접근한 최초의 사람이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허락받아 이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군요.

책은 비비안 마이어의 인생역사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가지 자료들이 나오는데 비비안 마이어의 출생증명서, 부모의 결혼증명서까지 나옵니다. 전혀 알려진 바 없는 한 여성의 과거를 이렇게나 자세하게 추적 조사했다는데 정말 대단하죠. 가족과 유년기, 뉴욕에서 보낸 십대시절까지는 그녀의 조부모와 부모, 출생과 어린 시절을 갖가지 증빙과 탐문으로 확인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확인된 걸로 보면 그다지 축복받지 못한 가정환경이었던데 그로 인해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본명조차 숨길 정도로 폐쇄적이었답니다. 더우기 신문과 영수증, 편지 등 여러가지를 편집증적으로 모으고 보관했었다고 하네요. 생의 마지막에는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얻은 낡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2008년말 머리를 다쳐 뉴욕 하이랜드 파크에 있는 요양시설에 들어가게 되었고 2009년 4월에 그곳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책은 목차가 나오기 전 두페이지에 걸쳐 두개의 문장이 차례로 나옵니다. 첫번째는 저자가 모친과 기획자에게 헌정하는 글이었고 두번째는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이자 평론가, 감독 등으로 활동한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사진에 대해 언급한 글이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나면 수전 손택이 했다는 그 말이 비비안 마이어의 일생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책 가장 앞부분에 써 놓은 것이겠죠.

19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안 도러시 마이어는 책에 따름 그녀의 가정사가 꽤 복잡하다고 합니다. 부계쪽으로는 독일계이고 모계쪽으로는 프랑스계였다는데 개신교도인 부친과 카톨릭교도인 모친은 1919년 성 베드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1남 1녀의 자식을 낳았답니다. 하지만 비비안을 낳은 이듬해인 1927년 부부는 헤어졌고 아들은 부친을, 딸은 모친을 따라 가게 되었는데 1932년 모친이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비비안은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네요. 하지만 재혼한 부친이 많은 비행으로 감옥에 들어간 아들 칼을 외면하자 부친을 대신해 아들을 돌보기 위해 1938년 모친 마리와 비비안은 다시 뉴욕으로 향하는 노르망디 여객선에 오르게 되었다죠.

저자는 비비안이 카메라를 처음 접한 시기를 프랑스에서 성장하던 시기로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 1933년 비비안의 사촌 실뱅 조소가 태어나자 모친 마리는 1930년에 출시된 뤼미에르 루미박스 카메라를 꺼내들어 많은 사진을 촬영했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의 비비안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비비안은 1950년 이모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고자 프랑스로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주 작은 박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답니다. 그녀는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었고 부지런히 사진 기술을 익혔으며 마을 사진관의 운영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네요. 비비안이 인화한 사진들 중 절반 가량이 이 당시 촬영한 사진들로 프랑스에서 찍은 초기 사진들이 비비안이 가장 아꼈던 사진들일 것이라 여겨진다는군요. 그녀가 남긴 사진 관련 아카이브는 네거티브 필름 10만여장(65%), 현상하지 않은 필름 4만5천여장(30%), 현상한 사진 7천여점(5%)으로 되어 있답니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신화는 그녀가 죽은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고흐처럼 사후에 평가를 받고 천재작가의 반열에 오른 케이스와 매우 흡사하단 생각이 드네요. 그녀의 경우에도 평범치 않으면서 미스테리한 그녀의 일생과 범상치 않은 그녀의 사진들로 호평을 받게 된 듯 합니다. 혹자는 그녀의 사진작품들에서 현대 셀프 포트레이트와 스크리트 포토의 다양한 기법을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로서는 그러한 기법을 사용한 이가 없었다면서 그녀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녀의 사진들은 1950~80년대 거리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었고 사람들의 빈곤과 우울, 사랑, 유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다는데 동시대에 이런 느낌의 사진을 촬영한 포토그래퍼는 없다시피하다네요.

그렇다고 그녀가 전혀 외부와 단절되어 사진작업을 한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책에 따름 그녀의 사진 중 판매한 것도 있다고 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3년 센트럴파크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제 눈에도 유명 사진작가들의 사진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게 없어 보이죠. 비비안의 인물사진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뒷 배경이 살짝 흐려지는 아웃포커싱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보다 선명하게 인물이 부각되고 강조되어 보이죠. 이외에도 빛과 그림자. 역광과 거울효과 등 다양한 실험을 한 듯한 사진들이 다수 있습니다. 특히나 자신을 촬영한 사진 중 그림자를 이용한 사진들이 책에는 꽤 많이 나오고 있어요.

누구에게도 자기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았던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비비안 마이어에게 사진은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었을 거라고도 하구요. 불우했던 어린시절과 강박적 성격, 그리고 예술적 감성이라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조합을 보여주는 비비안 마이어를 저자는 그녀가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다고 보는거 같습니다. 보모라는 직업을 평생 해왔던 그녀가 벌어 먹고 살기에도 버거웠을 듯 한데 그렇게나 사진을 촬영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사진기 보급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50년대에 사진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 수준의 사진진 기록물을 남겼다는건 정말 대단한거죠. 이래저래 관심 가는 사진작가입니다. 저도 기록 남기는 걸 좋아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에게 있어서 사진촬영은 그녀에게 존재의 의미 그 자체인 듯 보입니다. 그녀는 항상 목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고 틈 나는대로 수시로 촬영하곤 했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촬영한 사진 대부분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일 수도 있겠지만, 사진 인화는 커녕 현상하지 않은 필름 그대로 놔두었다는건 좀 이상합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목적으로 촬영에 임하였는지는 그녀 자신만이 알겠지만 사망한 이후 그녀의 사진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져서 거장들 못지 않은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지금의 현상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런지 살짝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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