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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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온 스물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 -

 

 

 

 

 

 

지은이 : 김선지

펴낸곳 : (주)은행나무

발행일 : 2020년 6월 17일 1판1쇄

도서가 : 16,000원

 

 

 

 

 

 

현대 이전, 근세까지의 서양의 예술 분야, 특히 미술 분야에는 여성이 극히 드믑니다. 물론 백인종 외 다른 인종의 인물도 거의 찾아 보기 힘들죠. 그건 지금까지의 세상이 기득권(권력)층에 속하는 남성들 중심으로 흘러 오고 체계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흑인이나 동양인, 여성들은 미술사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봐야할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최근 독특한 제목을 가진 책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는 책으로 서양 미술사에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성작가 스물한 명에 대하여 저자의 시각으로 풀어 쓴 도서였어요. 물론 책에 수록된 인물들은 전부 서양 백인의 여성들입니다. 동양의 미술계는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전부터 발달했었지만 이 책에서는 단 한명도 나오질 않는 걸 보면 저자가 논외로 처리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공부했다는 조금은 특이한 과정을 보여주는 분입니다.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에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듯 보이는데 책 내용을 보면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글들이 꽤 많이 나오더군요. 서양 미술사에서 알려지지 않고 사라진 작가들을 발굴 소개하는 범주를 여성 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의 사람들까지 확대하여 진행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작가의 말. 걸출했던 여성 거장들을 찾아서>로 시작하여 <1부.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2부. 편견과 억업을 담대한 희망으로 바꾸다>, <3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로 마무리됩니다. 1부에서는 7명, 2부에서는 9명, 3부에서는 5명, 도합 21명의 여성 작가들이 나옵니다. 모두 낯선 이름들이었는데요. 하지만 읽다 보면 르느와르 작품의 모델이기도 했었던 수잔 발라동과 같이 "아.. 그 사람이구나.."란 말이 나오게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소개되는 여성 작가는'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로 16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활동하던 여성조각가입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미니어처 제작가로 볼 수 있을 듯 한데요. 그녀의 작품을 보면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조각 재료로 과일 씨앗을 사용했단 점인데요. 그 작은 씨앗 조각에 정교하게 조각해 낸 작품을 보면 정말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르네상스시대 최초의 여성 조각가랍니다. 그녀 이전에도 그녀 이후에도 여성 조각가를 찾기 매우 힘들다네요. 그녀는 귀족집안은 아니었지만 부여한 공증인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볼로냐대학에 입학하여 미술을 배웠지만 당시 성차별적 사회 가치관으로 인해 미술가로서 남성과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가 없었답니다. 끊임없는 미술계 남성들의 부당한 대우와 끌어내림에 시달리다가 말년에는 모든 공공작업에서 손을 떼야 했고 결국 무일푼에 흑사병까지 걸려 외로이 홀로 40세에 사망하게 되었다는군요. 살아 생전에 작품성을 인정받는다는 건 성차별을 떠나 남성들에게도 드문 일인데 여성이면 더욱 어려웠겠지요.. 

 

 

 

 

 

책에 수록된 회화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는 '유디트 레이스테르'였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당시 여성이 가입하기 힘든 성 루카 길드 회원으로 입성했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전문화가로 이름을 날렸다는군요. 네덜란드 서부의 하를렘에서 맥주 양조업자의 팔삭둥이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술 신동으로 그 재능이 알려졌지만 어떻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스스로 전문화가의 길을 개척했다고 하네요.

당시 인물 회화 작품들은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들인데 반해 그녀의 작품들은 쾌활한 표정이 가득한 평범한 일상 속의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을 담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권위있는 화가 조합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가정에 묻혀 활동은 중단되었고 점차 미술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군요.. 더우기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JL과 별을 조합한 이니셜을 남겼음에도 화가였던 남편 얀 민세 몰레나르 또는 화풍이 흡사한 프란스 할스의 작품으로 팔려 나갔답니다..

 

 

 

 

 

책에는 미술가라 하기엔 좀 어색한 직물 디자이너도 나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패션계와 미술계는 별개의 분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구분은 있지도, 하지도 않았던 시기였을테니 이해해야겠죠. 그 직물 디자이너는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입니다. 그녀는 산업혁명 전후인 18세기 영국에서 실크 직물 디자이너로 활동하였는데 직물에 그림의 원리를 도입하여 직물 디자인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라는군요.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고 40대부터 실크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특이한 행보를 보여주었답니다

그녀가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꽃무늬 패던을 사용하여 디자인한 것들을 보면 지금의 시각으로 봄 평범해 보이지만 당시로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랍니다. 이외에도 양식화된 패턴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영역이 매우 넓고 다양했다는데 현재까지도 그녀의 수많은 작품들과 도면들이 전해지고 있다는군요. 

 

 

 

 

 

바로 이어지는 여성작가는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고급맞춤복 또는 고급의상점을 의미하는 오트쿠튀르(haure-couture)의 창시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디자이너라 일컬어지는 '로즈 베르탱'이 바로 그녀로 프랑스의 가난한 시골마을 하류층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파리로 상경, 모자상점 견습생을 시작으로 패션계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이후 탁월한 디자인 능력을 보여 주면서 영향력 있는 귀부인들의 옷을 만들게 되었고 마침내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레스를 전담하는 위치에까지 올라가는, 소위 인생역전에 성공한 여성이지요. 

그녀는 자신이 만든 드레스 가격을 천문학적인 값을 매겼다는데요. 책에선 이것을 옷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의 가치를 매우 높게 책정한 것으로 패션을 노동적 작업에서 예술로, 디자이너를 단순한 장인에서 창조하는 예술가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마리 앙투아네투는 그녀에게 매년 3백여벌의 드레스를 주문했고 한번 입은 옷은 두번 다시 입지 않았다는데요. 일년에 약 9만파운드(1억3천만원)을 지출했었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된 베르탱의 패션은 런던과 베니스, 비엔나, 샹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티노플 등 전 유럽도시로 퍼져나가 유행을 선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프랑스가 패션산업의 탄생지이자 중심지로 이어지게 되었다는군요.

 

 

 

 

 

마지막으로 살펴보려는 여성작가는 '거트루드 지킬'로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그 지킬(Jekyll)과 철자까지 똑같습니다. 소설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그녀의 남동생이자 성공회 신부인 월터 지킬과 친구였다는데요. 친구의 성을 따와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하여 소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이중인격자인 주인공에 자신의 성을 붙였으니 당연히 당사자들은 좋아할리가 없었겠죠. 실제로 매우 싫어했다고 전한답니다. 

19세기 영국 런던 인근의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원래 화가였답니다. 18세에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의 길을 선택했는데 마흔에 이르러 실명에 이를 정도로 시력이 손상되어 정원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죠. 이후 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 4백여개의 정원을 만들고 다양한 정원 관련 잡지에 기사를 기고하는 등 그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답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현대의 정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하네요.

그녀는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원예사가 아닌 미술가의 감각으로 정원에 그림을 그린다는 자세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여유를 주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기에 자연의 힘을 오롯이 느끼드록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말했다는데요. 그러한 소명의식을 가진 그녀는 정작 본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1932년 8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답니다..

그녀가 꾸민 정원들을 보면 조형물과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너무 방만스럽게 자연적이지도 않으면서 다양한 색감의 꽃들을 이용하여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으로 미묘한 색채 차이를 표현하 듯 꽃으로 색감의 연출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책은 알려지지 않은 21명의 여성 미술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서제목과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표현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내용 이해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오히려 인종차별과 같은 다양한 측면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죠. 근대 이전의 미술계를 보면 현대와는 달리 살아 생전 인정받고 성공하는 예술가는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과 계급(귀족/평민)차별 등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어처구니 없는 가치관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한 개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거 같네요. 우리나라에도 허난설헌과 같이 유교적 가치관에 파묻혀 스러져 간 여성 위인들이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몰랐던 여성작가들을 알게 해주기도 했지만 여러가지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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