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보루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유족과의 교류
야마카와 슈헤이 지음, 김정훈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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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인간의 보루'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유족과의 교류 -

 

 

 

  

 

 

지은이 : 야마카와 슈헤이(山川修平)

옮긴이 : 김정훈

펴낸곳 : 소명출판

발행일 : 2020년 3월 30일 초판

도서가 : 17,000원

 

 

 

최근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간다움이 과연 무엇인가란게 얘기되곤 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인문학의 주요 논제 중 하나였던 인간다움은 수많은 의견과 주장들이 제시되어 왔죠.

예전에 읽었던 '인간다움의 조건'이란 책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감정으로 10가지(공포,분노,혐오,슬픔,질투,경멸,수치,당황,놀람,행복)를 들었던게 생각나는데요.

사실 동물 중에도 이러한 감정들, 공포나 분노, 슬픔, 행복들을 노출하는 경우 볼 수 있기에 의문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네요.

얼마 전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볼 일이 있었는데 외형상 인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수명이 4년 밖에 안되는 리플리컨트(복제인간)들이 끊임없이 자기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존재인지 의문스러워 하던 것도 생각납니다.

제 생각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경험에서 파생되는 공감능력과 진실에 대한 양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공감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생각케 하는 책이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일본인이 집필한 이 책의 원 제목은 "人間の砦"으로 우리나라에는 <인간의 보루>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죠.

검색해 보니 일본과 한국에서 출간된 책의 표지가 좀 다르던데요.

한국판 표지는 일본 군인들이 조선의 소녀들을 이끌고 가는 정면에서 촬영된 사진이 사용된데 반해 일본판 표지는 소녀들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군인과 민간인의 뒷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란 차이가 눈에 띱니다.

책표지 사진들을 보니 한국판은 일본군이 소녀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이송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고, 일본판은 자발적으로 참가한 소녀들을 일본군과 미쓰비시 관계자들이 환영하는 사진 같아 보이네요..

일본인 중에는 한국인을 위해 인간 양심에 따라 활동하는 분들 꽤 있다고 들었지만 그러한 분이 집필한 책을 접해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읽다 보니 한국인 중에도 타국민을 위해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가 궁금해지더군요.

 

  

 

 

저자는 1936년 일본 이와테현 출신으로 출판업과 주택산업을 거쳐 정년퇴직후에는 문필활동 중에 있는, 일생동안 많은 곡절이 있었다는 분입니다.

17세 때인 고교 2학년 재학중 폐결핵에 걸려 4년동안 요양생활을 하게 되었고 21세 되던 해에 다시 고교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는군요.

대학 졸업후에는 출판사에 취직하였고 5년 후 독립하여 영세 출판사를 설립했지만 3년 만에 막대한 부채만 남기고 실패하게 되어 자살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생에 걸쳐 이 정도 수준의 우여곡절 겪은 이는 수도 없이 많겠지요.

버블경제 초기시절에는 주택산업계에 투신하여 정신없을 정도로 일에 열중하였답니다.

그러다 1990년 한국 여행을 처음 가게 되었고 이후 한국의 문화, 풍속, 역사, 민족성에 홀려서 70회가 넘게 방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고 우연한 만남 또한 많았었다는데요.

그중 제주도에서의 이 책 주인공과의 우연한 만남이 가장 드라마틱하고 중요하게 느껴진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 본문 1장에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구요.

 

책은 <서문>, <1. 반도 여자정신대 근로봉사대>, <2. 조선반도 · 냉전의 틈새기에서>, <3. 추도, 그리고 제소>, <4. 주문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 <5. 인간의 보루>, <부기/미주>, <후기/역자 후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두 주먹을 수시로 불끈 쥐게 하는 내용들이 꽤 나오는데 특히 3장과 4장이 그러했죠..

책에 나오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관계자들의 주장들을 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그들에게 양심이란게 있는건지.. 인간이 인간다워 질 때가 과연 언제일까요?

 

  

 

 

책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모습들이 투영되는데요.

서문에도 약간 언급되어 있지만 책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1944년 10대 중반의 소녀 3백여명이 일본인들의 감언이설속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이송되어 군용기 생산작업에 투입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녀들의 가혹한 운명과 저자가 우연히 만나게 된 근로정신대 유족으로 인해 알게 된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조선여자근로정신대'전후 배상을 둘러싼 투쟁과 지난한 재판 과정들을 저자의 양심에 따라 담담하게 그려 낸 에세이"

 

  

 

 

에세이는 2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저자'와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유족 '김중곤'입니다.

1992년 여름, 버블경제가 극에 다다라 내리막에 접어든 시기에 저자는 영업 관련 친목회를 통해 제주도로 골프여행을 가게 됩니다.

둘째날 복통으로 홀로 호텔에 남은 저자는 주변을 산책하다 약속다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김중곤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1924년 전북 순창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중곤은 그중 여동생인 순례가 14세 되던 1944년 여학교에 보내주고 급료도 받을 수 있다는 일본인의 거짓에 혹하여 일본 미쓰미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토쿠공장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여학교나 급료는 볼 수도 없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죠.

불과 5개월이 지난 때 도난카이 대지진이 나고야를 강타하면서 공장에서 일하던 여동생 순례는 무너지는 벽돌에 깔려 숨지고 친구 복례는 그 모습을 목격하고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생존하게 됩니다.

복례는 다시 다도야마현의 다이몬 군수공장으로 재배치되어 종전때까지 중노동을 하게 되었고 종전후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살아서 귀국한 순례의 절친이자 김중곤과 혼인하게 되는 김복례 여사와 당시 기숙사 사감 등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네요.

 

일본 정부는 1965년 조인된 <한일청구권 경제협력 협정>의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라는 한 문장을 근거로 모든 법적 책임은 종결되었다 주장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본법원은 피해자들이 일본국가와 일본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모든 개인 배상청구소송은 기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 정부 관계자나 전범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사죄나 사과는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구요.

책에는 일본이 주장하는 근거가 협정의 내용은 물론 국제법상으로도 근거가 미약하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들에게서 사죄와 배상은 지금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지요..

 

가장 궁금했던게 왜 일본인이 한국인의 입장에 서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는지였습니다.

책에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것은 가해국의 시민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 하면서 그게 바로 인간의 보루이자 양심이라고 제시하고 있는데요. 

저자는 일본에게 양심을 묻고자 일본의 가해 역사를 깊이 자성하고 인도주의와 현실주의 이념에 입각해 구원받으려는 화해의 시각으로 자전적 에세이를 집필하였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환상의 행복인 종교를 폐지하는 건 인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라 하면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종교가 주는 환상에 빠지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을 했다죠.

사이비 종교나 광신도들을 통해 그러한 위험성이 실제로 발현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이데올로기나 신념 또한 이러한 종교가 가진 위험성과 비슷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듯한 그들 역시 이러한 위험과 다를게 없는 것 같은데요.

언젠간 국제적 문제를 일으키리라 여겨지는, 심히 우려스런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朝鮮女子勤勞挺身隊).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과 국내의 군수공장 등에 강압과 사기에 의해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의 여성들로서 그 인원은 약 7만여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정신대라는 단어가 일본군 위안부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피해자들은 그 피해사실을 숨겨올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근로정신대라고 모집해 놓고 실제로는 위안부로 끌려간 경우가 있었기에 그렇다는군요.

지금은 명확히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는 분리되어 사용되고 있답니다.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이지만 언젠가는 청산해야 할 지난 일들입니다.

그것은 일본의 엄중한 사죄와 적절한 배상이 선행되어야 겠지요.

일부분이지만 근로정신대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 한번 읽어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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