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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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飜訳語成立事情)'

- 근대 서양의 개념어를 번역하기 위한 고군분투의 역사 -

 

 

 

 

 

 

 

저자 : 야나부 아키라(柳父 章)

번역 : 김옥희

발행처 : (주)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발행일 : 2020년 3월 15일 초판1쇄

도서가 : 12,800원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사회(社會)나 자연(自然), 권리(權利), 자유(自由)와 같은 단어들은 한자어이기에 중국에서 전해진 말들이라 보통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여기고 있었는데요. 최근 읽은 책에서 이 단어들이 일본에서 서양의 개념어들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들이라는걸 새롭게 알게 되었죠. 그 책의 제목은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원제:飜訳語成立事情)>라는 책으로 일본의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인문 서적 시리즈물로 유명한 '이와나미문고'를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번역출간한 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와나미 시리즈물 꽤 많이 읽어봤었기에 그 대강의 형식과 구성은 짐작되었었는데 책 외형 디자인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죠. 책 외피를 벗기면 볼 수 있는 강렬한 주황색상이 조금 밝아졌고 타이틀 배치 구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도입했나 보다 싶었죠.^^

 

 

 

 

 

 

저자는 그간 이와나미 시리즈물과 같이 연배가 있는 분으로 1928년 일본 동경 출생의 번역어 연구자이자 비교문화론자인 분입니다. 2018년에 별세하셨다지만 지금도 저자의 홈페이지가 조회가 되고 있더군요. 번역어와 관련된 다수의 집필,출간을 하셨던데 이 책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의 원전은 1982년 처음 출간되었고, 2003년에 <번역어 성립 사정>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어 많은 이들의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물론 관련분야 종사자들 이야기겠지요.^^

 

 

 

 

 

 

책은 번역어라 하는 10개의 단어를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머리말>에서 이 책의 구성을 보여주면서 시작하고 있고 이어서 <제1장. 사회(社會,society)>, <제2장. 개인(個人,individual)>, <제3장. 근대(近代,modern)>, <제4장. 미(美,beauty)>, <제5장. 연애(戀愛,love)>, <제6장. 존재(存在,being)>, <제7장. 자연(自然,nature)>, <제8장. 권리(權利,right)>, <제9장. 자유(自由,freedom or liberty)>, <제10장. 그(彼,he), 그녀(彼女,she)>로 10개의 번역어에 대해 저자가 연구하고 조사한 내용들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역자 후기>로 저자와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구요.

 

 

 

 

 

 

책에 번역어라 수록된 10개의 단어는 일본의 근대시기인 에도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초기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에는 없었던 단어들을 어떻게 번역하게 되었는지, 그 탄생의 과정을 거쳐 새로이 의미가 부여된 단어들을 말합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진 단어도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카세트 효과>를 거치면서 번역어로 그 의미가 점차 성립되고 정착되어 가는 과정들을 책에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지요. 책에는 '카세트 효과'를 일본어에서 한자어가 갖는 효과를 말하는 것으로 작은 보석상자를 의미하는 카세트(Cassette)가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끌어당기는데 번역어도 이와 유사한 효과를 발휘하기에 그렇게 명명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번역어는 '사회(社會)'로 영어로는 Society를 말합니다. 그런데 근대시기의 일본에는 society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없었다는군요. 당시 일본에서 출간한 외국어 사전들이나 번역 도서들을 보면 society에 대해 다양한 말들로 표현하고 있었더랍니다. 사전에는 주로 '동료, 교제, 조합, 동아리'라 되어 있고 후쿠자와 유키치의 번역서에는 '인간 교제'란 말을 쓰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나카무라 마사나오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번역하면서 '사회'란 단어가 쓰여졌고 이후 '세간'과 함께 자주 사용되다가 '사회'가 정착을 하게 되었답니다. 언어 역시 생성과 진화, 그리고 정착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죠. 일본의 번역어는 뜻이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의미의 단어가 많았는데 이것은 외래문화 수용에 적극적이던 시대이지만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용례가 부족하여 불명확한 의미로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답니다. 이러한 일본의 번역어들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파되어서 우리는 별다른 고민없이 일본의 번역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문과학에 사용되는 단어들을 보면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것 같네요.

 

 

 

 

 

 

 책의 마지막에는 '그(彼)'와 '그녀(彼女)'가 번역어라며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3인칭 대명사인 he와 she가 그것일텐데요. 처음엔 이게 번역어라는게 의아했었죠. 그런데 내용을 보니 일본에서는 서양의 he와 일본에서 쓰는 彼에는 그 의미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어에는 3인칭 대명사란게 없고 彼(저 피)는 원래 지시대명사였답니다. 지금도 일본어에는 3인칭 대명사가 없다고 봐야 하네요. 그러기에 일본에서 彼와 彼女가 3인칭 대명사의 번역어로 사용되면서부터 그 뜻이 변했고 지금에는 일상어로도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 과정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은 19세기 중반 일본에서 번역된 개념어 열 개를 대상으로 근대 일본 번역어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번역어들이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번역되어 번역어로서 정착되어 가는지 그 과정들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죠. 서구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번역어를 만들어냈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 남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번역어들은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번역을 위해 당대에 주로 한자를 사용해 새로 만들어진 경우와 기존의 일본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 번역어로 정착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든 원어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서구의 개념들이 일본적으로 변질되거나 가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는 구체적인 검증을 통해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 평생을 걸고 연구했다는게 놀라웠죠. 일본인이기에 가능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우리나라도 외래어라 해서 흔히 사용하는 말 참 많지요. 그 말들이 언제부터 사용되어 왔는지, 그 유래는 어떠한지는 대부분 모르고 쓰고 있을 겁니다. 언어는 생명과 같아서 탄생과 정착, 진화, 그리고 소멸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런걸 생각해 봄 일본인들이 말하는 그들이 사용하는 번역어에 대한 연구와 조사. 우리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기에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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