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후기]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 페리의 구로후네에서 후쿠시마 원전까지! -

 

 

 

 

 

저자 :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

번역 : 서의동

펴낸곳 : (주)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발행일 : 2019년 6월 15일 초판1쇄

도서가 : 10,800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는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를 27명이나 배출해 낸 기초과학이 탄탄한 나라라고들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그 배경이 참 궁금했었는데 때마침 일본의 과학기술 성장사에 대해 자세하게 보여주는 도서를 접할 수 있었어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이란 책으로 '총력전'이란 제목에서 내용이 좀 과격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객관적 시각을 기반으로 일본이 근대화 시기부터 그들의 과학기술 분야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일본인 한 과학사가가 비판적으로 서술한 도서였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1938년 처음 출간된 인문학 문고판으로 유명한 <이와나미 신서>를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에서 독점 번역 출간한 것으로 예전 이 시리즈 몇권 읽어 본 경험 그대로 학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책에 씌워진 겉표지를 벗겨내니 강렬한 주황색으로 상징되는 '이와나미 시리즈'의 겉표지 디자인 여전히 볼 수 있었구요.

 

 

 

 

 

저자는 1941년 일본 오사카 출신의 과학사가(科學史家)로 학부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분이랍니다. 경력상 특이한 점은 대학원 시절에 전공투 대표를 했었다는 것인데요.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라 하면 일본의 1969년 공경대 야스다강당 점거 사건으로 유명한 학생운동조직인데 그 조직 대표를 지냈다니 저자의 사상적 성향과 신념이 어떠한지 알 것 같았죠. 저자에 대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상당히 많은 정보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동경대 전공투 의장으로 활동하던 중 1969년 가을에 '전국 전공투연합 결성대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연합 결성대회 장소에 참가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답니다. 일본 전공투를 상징하는 존재였다는군요.. 우리나라로 치자면 80년대말 90년대초 학생운동 조직이었던 전대협의 의장과 유사해 보입니다.  

 

 

 

 

 

책은 <서문>, <제1장. 서구와의 마주침>, <제2장. 자본주의를 향한 행보>, <제3장. 제국주의와 과학>, <제4장. 총력전 체제를 향해>, <제5장. 전시하의 과학기술>, <제6장. 그리고 전후사회>, <제7장. 원자력 개발을 둘러싸고>, <후기/역자후기/참고문헌>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의 동인도함대의 내항에서부터 2011년 후쿠시마 도쿄전력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과학기술의 흐름을 시대배열 순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눈에 띠는 것은 일본은 전쟁을 발판으로 삼아 과학기술을 부흥시켰다는 것이었는데요. 일본은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받아낸 전쟁배상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군·관·학이 합심하여 비약적인 과학(군사)기술 발전을 이뤄냈답니다.

 

 

 

 

 

일본의 과학기술사를 보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시작은 매우 다르지만 본격적인 성장기의 모습은 판박이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역자 후기에도 그러한 소회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역자는 책을 번역하면서 광복 이후 한국 근대화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박정희 시대는 이 책에 서술된 1930년대 총력전 체제와 판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하고 있지요.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며 익힌 총력전 체제 시스템을 집권기간 철저히 복원했다고 역자는 보고 있는데요. 일본 근대 과학기술 150년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과정을 되돌아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1842년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는 것을 목도한 일본의 지배층은 서구의 근대식 군사력에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되어 서양의 양학(洋學)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답니다. 일본인들은 근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사회사상이나 정치사상이 아닌 과학을 통해 인식했는데요. 그 과학은 증기로 움직이며 강력한 대포를 갖춘 군함과 같은 군사기술로 구체화되었다 하구요.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구로후네(黑線)를 이끌고 일본에 내항하면서 도쿠가와 막부는 개국을 하게 됩니다. 개국한 일본은 근대화를 에너지혁명으로 시작했답니다. 열과 전기가 생산과 운송, 통신과 조명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데 그로 인해 당연히 철도와 전신선이 일본 전역에 가설되고 증기동력으로 가동되는 공장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 과학기술은 '식산흥업, 부국강병(殖産興業, 富國强兵)의 형태를 띠게 되지만 이후 군부와 관료들에 의해 군의 근대화와 군비증강, 군사대국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답니다.

 

당시 일본의 방직제사공장에서는 대부분 가난한 농가의 어린 딸들이 여공으로 일했었답니다. 여공들은 구치소나 다름없는 비위생적인 기숙사에 들어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형편없는 노동대가를 받으며 극히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 한계를 뛰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 당하였다는데요. 노동의 가혹함을 못견뎌 도망치더라도 고향에 돌아갈 여비가 없어 작부나 창기로 전락하는 일이 많았고 귀향해도 결핵을 앓다 죽는 이들이 많았다는군요. 60~70년대 우리나라 근대화의 숨겨진 뒷모습들과 상당 부분 오버랩되는게 저만의 생각인가 싶습니다..

 

식산흥업, 부국강병을 슬로건으로 근대적 상비군 형성과 병행해 추진된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은 자원의 한정으로 인해 대륙침략을 기획하게 되고 그 결과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침략정책이 출현하게 되었답니다. 이로부터 일본의 제국주의는 태동되었다는군요. 1894년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일본은 열강들의 세계 분할 경쟁에 최후 멤버로 끼어들게 되면서 이후 일본의 침략역사는 아시아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극악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일본의 과학자들은 물론 기술자, 관료, 군인 모두가 일본제국주의 총력전을 향해 일치단결하여 나아갔답니다. 당시 내무성 기술관료는 "국가적 요청으로 본다면 일국의 가장 중요한 자원의 하나인 기술의 활용이 전체죽의, 국가주의적 목표에 이뤄져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는군요. 물론 이에 비판적이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였다 합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쟁을 향한 총동원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의 모든 것이 군수공업에 동원되게 되었답니다. 당시의 과학기술인들에겐 부족한 자원의 과학적 보전이 과학 동원의 가장 큰 임무였다는군요. 그 사례로 독일을 예로 들고 있는데 공중질소에서 화약을 만든다든가, 점토에서 알루미늄을 만든다든가, 여타 원료자원을 과학적으로 합성하여 군수 자재 보급을 개선시키는 것과 같은것이랍니다. 모든 것이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군·관·학이 과학 진흥과 기술 개발의 일원적 지도가 이뤄진 시기라는군요.

 

그러한 총력전을 펼치지만 연합군에 비해 모든게 부족한 일본은 당연히 패망합니다. 패망 이후 미 군정은 일본의 비군사화 정책을 시도했지만 일본 군수산업과 관련된 만주땅에서 시작된 총력전 체제는 전후에도 모습만 바꾼 채 살아남았다죠. 실제 패전후 전쟁책임 추궁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합니다. 그리고 이 체제가 전후 고도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하구요. 일본 과학 전개의 기초는 전쟁으로 배양된 것이고, 군사목적 또는 군의 압력으로 일본의 사회정책이 이뤄졌으며, 일본 근대화는 군국주의의 진전이라는 사회조건하에서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패전 직후 일본에서는 패전의 원인으로 과학전의 패배, 과학의 낙후함이 한창 거론되었답니다. 저자는 이를 대본영의 허위선전과 전쟁 지도의 책임을 처음 겪은 원자폭탄이란 과학으로 핑계를 대 유야무야시키려는 거라고 보고 있는데요. 보유 자원의 압도적인 부족함을 만회할 정도로 과학이 만능이 아니기에 패전의 책임을 과학기술에 떠넘기는 것은 책임 회피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패전의 원인을 과학기술의 낙후성으로 귀결시킬 경우 그 주된 책임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져야 하지만 이러한 자각은 보이질 않았다네요. 대신 '유일 피폭국'이라는 전후 일본의 상투적 언사가 등장하여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가해자임을 지우고 은폐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계에서는 과학자로서 전쟁에 협력한 책임의 자각과 반성은 결여한 채 '과학기술 부족', '과학기술의 낙후성'을 이용해 '과학기술의 진흥'만을 말해왔답니다. 과학자들은 <과학 진흥에 의한 고도 국방 국가 건설>이라는 간판을 <과학 진흥에 의한 평화 국가 건설>로 바꿔 끼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연구에 열중할 수 있었다네요. 제로센 전투기나 전함 야마토를 만드는 군사기술이 승용차와 신칸센을 만드는 과학기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전시하에서 전쟁 수행의 열쇠는 과학기술에 있다면서 전쟁에 전면 협력했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똑같은 위치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장은 일본의 원자력 개발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본 과학기술의 파탄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메이지와 함께 시작된 일본 에너지 혁명은 1970년대 중반 고도성장의 종언으로 종국을 맞이했고 후쿠시마 사고로 폭주한 것이랍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도 도무지 해결방법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답니다.

 

원자력 발전 기술은 그 자체로 원자력발전소 이용이나 핵무기 사용 둘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원료인 우라늄 채굴에서 정기 점검에 이르는 과정에서 방사능 피폭이 불가피하다는 점, 원전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오염과 방서선오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 사용후 사람이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폐로가 남고 수십만 년에 걸쳐 위험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사용후 핵원료의 처분방법 미해결, 안전성이 전혀 실증되지 않은 점 등 원전의 치명적인 중대 결함을 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일본이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선언과 핵무기금지조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일본 내각이 미래 핵무장의 선택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참의원에서는 1955년 제정된 '원자력기본법' 제2조 {원자력의 연구, 개발 및 이용) 조항에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한다."란 내용을 2012년에 추가하였다는데요. 이건 안전보장이란 표현을 근거로 원자력을 군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라는 것이랍니다. 심지어 2016년 아베 내각은 "핵무기도 필요 최소한에 그친다면 보유하는 것은 반드시 헌법이 금지하는 바는 아니다"라 했다네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꾼다는 아베 일당들. 어디까지 갈건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일본과학기술총력전10.jpg

 

 

식산흥업, 부국강병에서 시작하여 총력전 체제에 의한 고도 국방국가 건설을 거쳐 경제성장, 국제경쟁이라는 대국주의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과학기술 진보에 기반해 생산력을 증강하고 경제성장을 추구해 온 일본은 이제 그러한 근대 일본 150년의 흐름과 결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명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죠. 지구 자원의 유한성을 감안하면 끝없는 확대와 성장을 추구하던 근대과학과 근대자본주의는 종언을 고하고, 실업없는 제로성장 사회로의 연착륙과 저성장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빈부격차를 없애가는게 더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책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과학기술 발전의 흐름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흑막도 처음 알게 되었구요. 일본의 개국 이래 150여년 간의 과학기술 흐름과 그와 관련된 사회상에 느낀 점이 참 많았습니다. 책 내용 대부분이 일본 과학기술과 연관된 일본의 근대와 현대사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들이 우리나라에도 유사하게 발생했었다는걸 생각함 개운치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일본의 환경오염 문제와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발생했었다는걸 보니 참..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대해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고 더불어 우리나라의 압축성장 시대를 돌이켜 보게 되는 좋은 내용의 도서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