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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평점 :
[도서후기] '서울 백년 가게'
-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장안 최고(古)의 가게 이야기 -
지은이 : 이인우
펴낸곳 : 꼼지락
발행일 : 2019년 1월 11일 초판1쇄
도서가 : 14,500원
조선이 개국한 이래 6백여년이란 세월동안 한반도의 수도 역할을 맡아온 서울은 지금은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메트로폴리탄 중 하나입니다. 1994년에 서울 정도 6백년 행사가 열렸던게 엊그제 같은데 그로부터도 벌써 20여년이 흘렀지요. 시간은 쏜살같이 내달리고 세월은 마냥 흘러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6백여년이란 세월을 이어 온 지금의 서울에는 과연 그 긴 세월을 이어 내려온게 있을까였지요.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유일한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제는 하나도 없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동해 옆에 위치한 섬나라는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게 수두룩하다던데 참 그렇네요.. 이번 도서후기는 <서울 백년(200years) 가게>라는 책으로 서울에서 그나마 긴 세월을 이어 온 가게들을 소개하는 도서입니다.
재개발과 리모델링 등으로 오래되지도 않은 건물들이 허물어지는 모습이 일상 다반사인 서울에서 백년을 이어 온 가게가 있다는 것이 처음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읽어보니 책에 수록된 가게들 중 1백년을 넘게 이어 온 가게는 없더군요. 가장 오래된 가게가 1920년대에 문을 연 '구하산방'이었으니까요. 저자는 서울에서 한결같이 사랑받은 가게 24곳을 소개하면서 서울사람들의 애환 서린 생활과 풍속의 숨은 역사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합니다. 서울에 존재하는 역사가 오래된 가게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성장에 관한 24곳의 가게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제가 봐도 참 좋은 가게, 착한 가게들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기자란 직업을 통해 갈고 닦았으리라 짐작되는 저자의 필력 때문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자는 1960년 포항 출신으로 30여 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신문기자로 일해 온 언론인입니다. 1988년 '한겨례신문' 창간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한겨례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는데요. 언론영상광고학과 겸임교수와 책 출간 등 기자 외적인 분야에서도 흔적을 남긴 분이더군요. 이 분의 경력사항을 보니 영화를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잘 아는 '시테21'이란 잡지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는게 제 눈길을 끌었답니다.
책은 서문과 본문 3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인 <들어가는 말>로 시작하여 <1장. 백년동안 이야기되는 가게>, <2장. 백년의 고집이 묘수가 되다>, <3장. 또 한 번의 백년을 기다리며>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각 장마다 8곳의 가게, 총 24곳 가게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두 '한겨례신문' 금요 섹션 '서울&'에 연재된 기사들을 다듬은 것이라 합니다.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 서울의 과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상점, 업체, 생활공간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게 소재발굴과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는군요. 지금까지 어떤 가게들이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분야에 아무래도 시선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먹는 것에 그닥 관심이 없다보니 식당이나 떡집, 빵집은 대충 읽게 되더군요. 대신 서점이나 극장, 클럽, 음반가게, 악기상가는 몇번이고 다시 읽게 됩니다.. 이렇게 편식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책에 수록된 24곳중 처음 소개하는 1곳과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3곳 간략하게 요약 소개해 보렵니다.^^
책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가게는 1956년부터 대학로에서 영업을 개시한 '학림다방'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곳이죠. 이곳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다방이 아니라 사회문화 운동가, 유명 무명의 예술가, 문인, 사상가들이 자취를 남긴 곳이랍니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게 되면서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처음 학림다방을 열었던 운영자(신선희)가 이민을 떠나면서 변화를 맞게 되었답니다. 이후 주인이 여러번 바뀌어 오게 되는데 1987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현재의 사장은 연극포스터와 보도자료 사진을 찍으며 연극패들과 학림에 드나들다가 이곳을 인수하게 되었다는군요.
책에 따름 70~80년대 학림다방에는 전혜린. 김승옥, 이청준, 천상병, 김지하, 황지우, 김광규, 유홍준 등 소설가나 시인은 물론 홍세화, 백기완 같은 반독재 민주화 투사들이 이곳에서 많이 만나곤 했었답니다. 신군부 쿠데타로 들어선 당시 정권이 반정부시위 주도자들이 정부를 전복하고자 혁명조직을 건설하려 이곳에서 처음 회합, 모의하였다 용공조작한 '학림사건'이 발생하면서 '학림(學林)'이란 말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네요. 8~90년대에 대학다녔던 사람들에겐 익히 들었던 학림사건, 몇년전 개봉했던 '변호인'이란 영화가 바로 학림사건과 부림사전이란 용공조작사건을 소재로 했었죠. 90년대부터는 학림다방이 대중문화의 산실로 바뀌어 가게 되는데 강준일, 강준혁, 김광림, 이상우, 김광석 등 음악가, 연극인, 문화기획자들에서부터 설경구, 송강호, 황정민같은 연기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의 역사를 이어왔답니다. 지금은 유명가수,배우들이지만 그들이 무명이던 시절, 이곳에서 무명의 설움을 달래던 곳이라네요.
이태원에 자리하고 있는 재즈클럽 '올댓재즈'는 1976년에 이태원 거리에 30여 평 규모로 처음 문을 열었답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재즈 전문 공연 클럽으로 2년 뒤 재즈가수 박성연이 서울 신촌에 문을 연 '야누스'와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곳입니다. 복사판으로나 들을 수 있었던 재즈 볼모지인 한국에서 생생한 재즈 공연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전문 연주자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외국의 재즈 흐름을 수입 전파하는 창구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죠.
올댓재즈는 43년째 이태원 거리의 기념물처럼 건재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처럼 문화예술분야에 척박함과 자영업의 영세성, 1981년 개업한 뉴욕의 대표적인 재즈클럽 '블루 노트'의 역사가 40년도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올댓재즈가 40년 넘게 망하지 않고 성황중인 현재의 상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놀라움 그 이상이랄 것입니다. 한국의 재즈매니아들의 미쳤다고 할 만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80년대 시절에 Rock 음악 심취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음반가게가 책에는 나옵니다. 황학동 벼룩시장에 자리한 '돌레코드'가 바로 그곳인데요. 80년대 당시에는 공연윤리위원회 음반심의위원회에서 검열을 통해 수 많은 음악들을 금지시켰었기에 Rock이나 Metal 계통의 음악을 들으려면 청계천 세운상가나 황학동 벼룩시장에 있는 음반가게를 찾아가야 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복사판(일명 빽판)을 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게 벌써 30여년전 이야기니 참 세월이 무상합니다..
돌레코드는 1975년 리어카 노점으로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온갖 장르의 레코드가 거래되는 도매상과 복제음반 제작상으로 커졌다 합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지적재산권 강화로 복제음반 제작은 철퇴를 맞게 되고 90년대 후반 MP3 인터넷 다운로드가 본격화되면서 기울져 간 음반업계의 현실로 인해 2000년대 이후 돌레코드는 중고레코드 전문점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는군요. 여전히 이곳을 통하면 구하지 못할 음반이 없다고 단골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답니다. 참고로 현존하는 최장수 음반가게는 1971년 개업한 서울시청광장 지하상가에 있는 '서울음악사'로 '돌레코드'와 더불어 이 두 음반가게가 2017년 9월 서울시에서 '오래가게' 39곳을 선정할 때 포함되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려는 가게는 가게라기보다는 상가라고 하는게 맞는 곳으로 바로 '낙원 악기상가'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악기 도소매상이 밀집한 상가로 유명한 곳이죠. 낙원상가는 1967년 서울시 도심부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1970년에 완공된 주상복합건물로 이때 같이 세워진게 세운상가랍니다. 낙원상가가 악기전문상가로 거듭나게 된 것은 1979년에 있었던 탑골공원 정비사업이 계기였답니다. 탑골공원 주변에는 파고다아케이드 등 각종 악기 점포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정부가 탑골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악기점포들을 철거하고 낙원상가로 옮겼기 때문이라는데 책에서는 이것 말고도 5공화국 정권의 공이 크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권이 소비문화 진작과 3S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통행금지 제도 해제와 심야영업 허용한 것 때문이랍니다. 이로 인해 각종 유흥업소가 번창하면서 악사와 악기 수요가 급증하게 되어 악기상과 악사들이 집결된 낙원상가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1980년대초 낙원상가 지점 은행의 현금보유액이 전국 2위(1위는 압구정동 지점)였다고 하니 말 다했죠..
지금의 낙원악기상가에는 2층에 종합악기매장이, 3층에 전문악기매장이 모여 있고, 4~5층에는 수입상과 관련된 사무실 등이 입주해 있으며, 찾아오는 손님들과 악기 동아리를 위해 합주실, 녹음실 등 연습공간과 야외부대 공연장도 갖춰져 있답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품목 숫자는 3만여종에 이를 정도로 각종 악기들과 악기에 부수되어 쓰여지는 수많은 장비들이 유통되고 있다는데요. 이러한 세계 최대규모의 서양악기 전문상가가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한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중학생시절 형님과 일렉트릭 기타 구입하려 몇번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학부형이 되어 아이들 교육을 위해 바이올린 구입하러 간 최근에 이르기까지 낙원악기상가의 형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낙원악기상가는 1990년대 후반 노래반주기 등장으로 침체기를 맞게 되었고 노래방의 대중화로 악사와 밴드 수요가 크게 감소하면서 더욱 침체되었답니다. 상가의 침체가 낙원동 일대의 낙후로 이어지자 서울시는 낙원상가 철거계획을 세웠는데 악기전문상가로서의 문화적 가치, 낙원상가 건물의 건축사적 의의 등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2013년 서울시는 낙원악기상가를 보호할 가치가 있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답니다.
책은 서울에 있는 백년까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오랜 세월을 이어온 가게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업시기로 보자면 1920년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강한 개성과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 가게들의 특성을 잘 잡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 마음에 드는 내용들이었죠. 전국적으로 이런 가게들을 소개해 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검색해 봤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더군요.
제 생각에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이나 역사, 전통을 주제로 한 것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참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