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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대화 -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도서리뷰] '적과의 대화'
-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



지은이 : 히가시 다이사쿠
옮긴이 : 서각수
펴낸곳 : 원더박스
발행일 : 2018년 9월 10일 초판1쇄
도서가 : 15,000원

최근 들어 남북관계에 다시 훈풍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만 해도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과 핵위협으로 전세계가 공포에 떨었었죠. 그런데 올해 들어 북한의 대외정책이 급변하여 경제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핵포기를 점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죠. 어떻게든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좋은 결과로 귀결이 된다면 대화로 적대적인 대립 상황을 극복한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은데요. 이와는 좀 다른 사례이지만 과거에 벌였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지 전쟁 당시 해당국의 주요지도자들이 모여 토론을 한 적이 있답니다. 최근에 읽었던 <적과의 대화>라는 책에서 그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베트남전쟁에서 서로를 적대 관계였던 베트남과 미국의 베트남전쟁 관련자 26명이 참여한 회담이랍니다. 여기에는 당시의 관료, 군인, 참모들이 모여서 나흘간에 걸쳐 회의했답니다.

저자는 국제 관계 분야의 전문가로 2004년까지는 일본 공영방송 NHK의 디렉터로 근무했답니다. 당시 베트남과 미국,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한국-미국-북한 등 다양한 분쟁 지역에 대한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기획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2012년에는 2년간 유엔 일본 대표부 참사관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대학교수 겸 국제관계 연구소 부국장을 맡고 있답니다.

책은 <추천의 글/한국어판 서문/서장>으로 시작하여 <1. 대화이전 - '적과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 대화 첫째날 - 상대의 의지와 목적을 제대로 파악했는가?>, <3. 대화 둘째날① - 전쟁을 피할 길은 없었는가?>, <4. 대화 둘째날② - 확전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이었나?>, <5. 대화 셋째날 - 비밀 평화 협상은 왜 실패했는가?>, <6. 대화 마지막날 - 이 대화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후기/관련 연표/베트남 지도>의 순서로 책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자별로 흘러간 토론의 순서대로 책은 편집되어 있는데 책에 기재된 내용은 비공개로 열린 나흘간 회의의 녹취록과 쌍방 대표자 인터뷰를 근거로 NHK스페셜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가? - 베트남 전쟁, 적과의 대화' 제작한 내용에서 밝힐 수 없었던 비화와 더욱 상세한 대화내용을 담았답니다.

먼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베트남 지도와 관련 연표부터 봅니다. 일단 베트남 전쟁의 주무대와 시점별 발생 사건들부터 대충이라도 알고 읽어야 내용 이해가 훨씬 수월해 질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죠. 다 읽어본 뒤에 돌이켜 보니 지도는 그렇지만 연표만큼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관련 연표는 일제가 패망한 1945년 8월 베트남독립동맹이 일제 봉기한 8월 혁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9월에는 호찌민이 베트남민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는군요. 이듬해 프랑스와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1954년에 인도차이나 휴전과 제네바 협정이 조인되었답니다. 1956년에는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의 통일선거 협의 제안을 거부하여 베트남의 정세는 살얼음판을 변해갑니다. 1964년 조작이란 설이 난무하던 통깅만 사건으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이듬해부터 폭격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1973년 파리협정을 시작으로 미국은 발을 빼기 시작하죠. 1975년에는 사이공이 함락되어 이듬해 베트남 통일국회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되어 통일이 완수됩니다.

책을 보니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베트남과 미국의 시각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런게 있다는건 알았지만 이정도로 커다란 간극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회담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회담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지요. '적과의 대화', 다른 말로는 '하노이 대화'라고도 불린다는 이 회담은 1997년 6월 20일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 특별회의실에서 3박4일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미국측 13명, 베트남측 13명이 참가하였는데 대부분 베트남전쟁 당시 정책 결정이나 전쟁 수행과 같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로 구성되었구요.


미국이나 베트남이나 아직도 베트남 전쟁의 내막을 국민들에게 세세하게 내보이기 곤란하고 들출수록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괴로와지는 그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쟁을 피하거나 조기에 종결시킬 기회가 없었는지를 테마로 격론을 벌이게 됩니다. 그 와중에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고 각자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 보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제 보기엔 미국측이 일방적이고도 편협된 시각이 많은거 같고 베트남측 시각은 그다지 잘못된거 같진 않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도미노이론에 근거하여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겠다는 미국의 이념과 민족 통일과 민족 자결권을 찾겠다는 베트남의 신념이 충돌한 전쟁입니다. 서로 다른 목적을 지녔던 두 국가가 베트남 땅에서 치뤘던 전쟁이었기에 미국은 가해자에 가깝다 보여지고, 베트남은 피해자에 가깝게 보여지는 것 같더군요. 그들의 대화를 보다 보면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베트남에게선 조선 혹은 대한제국의 모습이 투영되기까지 합니다. 침략자들이 침탈당한 자에게 너들도 잘못한게 많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회담 내용중에는 베트남 전쟁이 확산된 요인으로 두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1964년 8월 2일과 4일 미 구축함 매독스 공격(통킹 만 사건)으로 이로 인해 미국이 베트남에 대해 공격을 개시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1965년 2월 6일 미 공군기지 쁠레이꾸 공격으로 이 사건으로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건을 바라보는 양국 참가자의 시작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더랍니다. 첫번째 사건에 대해 2일 공격은 양측 다 인정하는 공격이 맞지만 4일 공격은 미국의 조작이라는게 베트남 측의 시각입니다. 자신들은 공격한 적이 없다는 것이죠. 두번째 사건은 더욱 기막힌데 미국은 전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있던 시기에 자국 기지가 공격을 받아 병사들이 다치고 죽게 되었기에 북베트남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해서 전쟁 확산은 어쩔수 없었다는 시각인데 반해 베트남은 3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지역 부대가 당시 쁠레이꾸에 주둔하던 남베트남 정부군 사령부을 공격했었던 당시 흔하게 벌어진 베트남 해방과 통일을 위한 게릴라 공격중 하나였을 뿐이었다는 겁니다. 서로가 다른 전쟁관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던 부분이었죠. 이 외에도 많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회담 참여자들이 회담 마지막 날에 공유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쌍방의 최저조건'은 다음과 같이 얘기됩니다. 그런데 이 목표를 말했던 맥나라마에게 응우옌칵후인이 이 목표를 언제 생각해내었는지 묻는데 그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저께 밤이라네요.
<베트남측>
1. 미국의 폭격 중지와 미군 철수의 확약 2.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연립 정권 참가 3. 베트남 통일을 향한 절차와 조건의 확립
<미국측>
1. 미국인 포로 석방 2. 미공산주의 세력의 연립 정권 참가 3. 통일 베트남이 소련과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대하는데 앞잡이가 되어 행동하지 않겠다는 확약
21세기 들어 세계는 증오와 폭력을 낳는 새로운 시대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이슬람과 미국,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등 지구 곳곳에서 험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죠. 저자는 하노이 대화를 통해 전쟁 지도자들이 상대방의 의지와 눙력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으며 오인을 되풀이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태평양전쟁에 패한 일본 역시 지금까지 되풀이하고 있는 과오, '실패를 은폐하고, 원인을 규명하지 않으며,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라는 일본의 뿌리 깊은 병페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확실히 일본정부의 행태는 문제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다는게 신선하게 와닿았습니다.

이처럼 책은 분쟁을 피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어떠한 길을 가야할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게도 이러한 회담이 있었으면, 혹 앞으로라도 이런 회담이 개최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