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 개화와 근대화의 격변 시대를 지나는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 표석 시리즈 2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도서리뷰]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 개화와 근대화의 격변시대를 지나는 20세기초 서울의 풍경 -

 

 

 

 

 

지은이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펴낸곳 : 유씨북스

펴낸날 : 2018년 9월 15일 1판1쇄

도서가 : 13,800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는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도읍지로 선택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서울이란 말은 원래 수도라는 의미의 말이었다는데 신라의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요. 서울은 조선이 도읍지로 선택할 당시에는 한양(漢陽)이라 불리웠지만 태조 한양부(漢陽府)의 명칭을 한성부(漢城府)로 고쳤다 합니다. 아마도 한양에 천도하면서 한양도성을 축조하였기에 '한성'이란 말이 같이 사용되었던 같습니다. 일제치하에 들어서게 된 1910년에는 조선총독부 칙령에 의해 '한성'이라 불리던 조선의 도읍 명칭을 '경성(京城)'으로 개칭했었답니다. 이번 쓰고자 하는 도서 리뷰는 이러한 서울의 과거에 대해 쓴 책입니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라는 책으로 근대화 시기 당시의 서울의 모습들을 표석을 통해 되짚어보고 그 역사를 살펴보는 내용이죠.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라는 일제 치하 당시 서울의 모습에 대해 쓴 책이 먼저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서적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책은 한 단체​의 이름으로 공동 저술되었습니다. 그 단체의 명칭은 <전국역사지도사모임>으로서 2015년에 시작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역사지도사들의 전국 모임이라고 합니다. '역사지도사'라는 이름이 생소했는데요. 검색해보니 전국의 지자체에서 역사지도사 교육프로그램이 많이 조회되더군요. '문화해설사'와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책은 ​1~2부로 '근대국가로의 시대적 요구'와 '개화와 근대화의 한성 풍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각 다섯개 파트로 되어 있어 모두 열개의 길을 소개하고 있지요. 그 수록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많은 현장 조사와 검토, 정리를 하여 책에 수록하게 되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책에 수록된 10개의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강몽 길', '서양의학 길', '중등교육 길', '신문사 길', '여학교 길', '태화관 길', '용산 길', '심우장 길', '백화점 길', '대학로 길'.

 

 

 

 

책의 시작으로 나오는 <책머리에 - 격동하는 20세기 초 한성의 풍경>은 이 책의 성격과 목적, 전반적인 내용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줍니다. 먼저 출간된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 출판콘텐츠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ㅎㅎ 여튼, 그 책 출판 후 일년 반만에 이 책이 출간하게 되었다는군요. 많은 이들이 '표석시리즈'에 호응을 보내주고 있다던데 저도 그 중 한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책에는 근대화 시기 서울, 당시 명칭으로 한성의 다양한 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길은 일반도로를 의미하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근대화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 자리들을 살펴 보면서 그 분포된 지역을 모아서 일대 지역을 부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는 그 분포 지역별 길 지도가 각 파트 첫머리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만 모아 봐도 찾아가보는데 아무 문제 없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도서 기획 참으로 신선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가 들어온게 고종 때란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종은 서양의 발달된 기술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이 동양 최초라는건 최초란 사실은 의외였습니다. 조선보다 먼저 근대문물을 들였던 일본보다도 먼저 도입했다는게 믿기지 않았죠. 에디슨이 1879년 10월에 백열등을 발명한 지 7년 5개월이 되던 1887년 3월 6일에 경복궁 향원지에서 처음으로 전등에 불을 밝혔는데 이때까지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던 때였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고종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었나 싶네요. 전화나 전차 역시 고종 때 도입되었고 그 도입 이유도 책에는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대의학이 도입된 것은 19세기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대의학에서도 극찬을 받는다 하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으로 상징되는 의학체계가 있었고 전의감, 내의원, 혜민서 등으로 그 체계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서양근대식 병원은 1885년 미국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이 처음 설립한 '제중원(濟衆院)'으로, 알렌이 병원 건립을 건의하였고 고종은 알렌의 주도 아래 '광혜원(廣惠院)'을 설치하게 하였는데 12일 만에 '제중원(濟衆院)'으로 바뀌게 되었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이죠. 당시 병원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는군요. 이 외에도 책에서는 조선시대 의료기관의 자리터와 근대식 병원의 자리터를 설명하면서 행정동 명칭의 유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지역명의 유래들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교육​기관들 중 많은 학교가 해방 후에도 명문학교로 이어져 왔습니다. 지금이야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옛 명성이 희미해진 경기고등학교와 대한민국 최상층 학부라 일컬어지는 서울대학교가 대표적이죠. 원래 강북에 자리하고 있었던 경기고등학교는 서울도시 확장과 강남개발을 위해 정부가 강남으로 이전시켰습니다. 이전하고 남은 경기고 자리에 지금은 정독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정독도서관 자리가 예전에 혁명가들이 살았던 자리라고 합니다. 첫 혁명가는 '성삼문'이고 두번째는 '김옥균'이랍니다. 두 분은 같은 터에 시간차를 두고 살았지만 역성혁명에 실패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단 점에서 삶의 궤적이 많이 비슷해 보입니다만 김옥균의 능지처참이 후 몰수된 그의 집에는 최초의 관립 중학교가 세워졌답니다. 특이한 건 교명 자체가 '관립중학교'였다네요.ㅎㅎ 책에서는 이곳만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건과 인물, 터의 기능이 변화되어 온 곳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답니다. 아.. 김옥균의 능지처참이 행해진 이듬해 1895년에 갑오개혁으로 능지처참이 페지되어 김옥균의 처형이 조선의 마지막 능지처참 집행이었다고 합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왔던 부분은 여섯번째 파트인 <태화관 길. 요릿집이 된 순화궁>이었습니다.​ 생소한 궁 이름이었기에 더욱 그러한했었죠. 이곳은 진정한 주인이 차지할 경우 명당 중의 명당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흉지 중의 흉지가 되었던 땅이랍니다. 순화궁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보자면 인사동길 29 태화빌딩, 인사동길 25 하나로빌딩 자리에 있었던 궁이랍니다. 그 자리엔 중종반정의 공신이자 세종의 여덟번째 아들인 영응대군의 사위(능천부원군 구수영)가 살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후 권력있는 자들에 의해 이어져 온 이곳은 세도정치 시기 때인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안동 김씨의 세도가 김흥근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후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 소유가 되었다가 그가 죽은 후 사당인 순화궁이 됩니다. 사당은 이듬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빈집으로 남게 된 순화궁은 흥선대원군의 사위이자 을사오적 이완용의 형인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하사받게 되었고, 이완용이 형으로부터 받아내어 이곳에 거주하였답니다. 이완용이 옥인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순화궁 터에 새로 건물을 짓고 태화관이라는 여관으로 바뀌게 되고, 1년 뒤인 1914년에는 여관에서 요릿집으로 용도가 변경됩니다. 이러한 태화관에서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을 하지요. 이완용은 그러한 역사적인 현장을 소유하고 있기 부담스러웠는지 1921년 미국의 외국 선교부인 남감리회 여선교부에 매각합니다. 남감리회 여선교부는 이곳을 태화여자관으로 변경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는데 1939년에 순화궁을 헐고 3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신축합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에서 새롭게 지어진 태화사회관을 몰수하여 종로경찰서로 사용했답니다. 그 건물은 1980년에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되었고  이후 빌딩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하나의 공간을 살펴보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이처럼 서울 사대문 안의 공간들 중에는 역사성을 지닌 장소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요. 책에서는 이를 "공간은 하나지만 그 자리에 쌓여진 역사적 시간의 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산이 흐르며 그 장소의 겉모습은 변할지 모르지만 장소가 내포하고 있는 역사의 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 말하고 있는데 무척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표석 사진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오가면서 봤었던 표석들도 많았지만 이런것도 있었구나 싶은 것도 많았죠.​ 시간 나는대로, 오가면서 보이는대로 틈틈히 살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그냥 지나친 표석들도 있던데 이제부턴 기록부터 꼭 남겨야겠네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있는 무수한 역사적인 공간들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 아니 '표석을 따라 ~ 거닐다' 시리즈 모두 읽어볼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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