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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 18세기 초 프랑스 레지 신부가 전하는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쟝 밥티스트 레지 지음, 유정희.정은우 해제 / 아이네아스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후기]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저자 : Jean-Baptiste Regis(쟝 밥티스트 레지)
해제자 : 유정희, 정은우
발행처 : 아이네아스
발행일 : 2018년 8월 15일 1판1쇄
도서가 : 15,400원

우리나라 상고사는 고조선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전해지는 사료가 극히 미미한 관계로 고조선사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죠. 중국의 상고사에 해당하는 하/상나라 역시 전해지는 사료가 거의 없는데도 우리처럼 논란이 심하진는 않던데 한국의 사학계는 왜 그럴까요? 그건 일제의 '식민사관'에 따라 교육받고 성장하였던 사학자들이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를 좌지우지했기에 그렇답니다. 이번 읽은 도서는 이러한 한국 사학계에서 특히 논란 많은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한 내용의 책이랍니다. 특이하게도 18세기 프랑스 신부가 작성한 사료를 근거로 한 내용인데요. 프랑스 선교사가 중국에 와서 중국과 그 주변 국가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기록한 내용으로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해 중국의 고서를 참조하여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 번역하고 해제한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쟝 밥티스트 레지라는 프랑스 예수회 소속 선교사로 1698년 포교활동을 위해 청나라에 가게 된 신부입니다. 그는 지도제작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로 지리와 문화 등 동아시아의 정보들을 유렵에 전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답니다. 그는 주로 청나라에서 제공하는 서적과 정보들을 검증하여 객관적으로 정리하였기에 오늘날 서양인들이 어떻게 조선을 바라보았는지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을 선교활동에 헌신한 그는 75세가 되던 1738년 북경에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책은 <출판사 서평>, <해제자 서문>, <머리말을 대신하여 던지는 화두>, <국내학자 편(이병도, 송호정, 윤내현)>, <레지신부가 직접 쓴 프랑스어 원사료>, <북한 및 외국학자의 견해로 본 고조선 지도>, <프랑스어로 책이 출간된 후 영어로 번역된 18세기 영어 원사료>, <국학역사학자들과 레지신부의 견해로 본 고조선 지도>, <18세기 초 레지신부가 쓴 고조선,고구려의 역사 한글 번역 및 해제>, <해제자들에 대한 질문 및 답변>, <맺음말을 대신하여>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 중 불어와 영어로 기재되어 있는 외국어 원문 부분이 무려 100여페이지에 이르는데요. 이 부분은 정말 뜬금없다란 느낌 받았어요..

책의 시작은 'Editor's Note'라 해서 영어 원문으로 시작됩니다. 보통 한글 번역본을 먼저 수록하고 뒤이어 원문을 기재하는게 일반적인데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다행히 바로 번역문이 나왔지만 처음엔 그걸 모르고 익숙치도 않은 외국어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생각하느라 머리 좀 아팠죠. 여하튼, 이 부분은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레지신부가 직접 쓴 플아스어 원사료'나 '영어로 번역된 18세기 원사료'의 경우처럼 이 분야 전문가나 해당 언어에 능숙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 그냥 넘겨 버리게 될테니까요.

해제자들은 '대고조선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 근거중 하나가 이 책에 나오는 레지 신부의 기록들이구요. 레지 신부의 기록들은 그 글의 내용으로 보건데 중국측 사료만을 보고 쓴 것이 자명하고 완연한 중국 중심주의적인 중화식 서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신부가 기록한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의 팩트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되어지기 때문이랍니다. 게다가 <삼국유사>의 내용은 물론 20세기 초 편찬된 <신단민사>, <신단실기>, <단조사고>의 내용과도 대부분 일치되기에 더욱 그렇답니다. 하지만 해제자들은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는 위서임이 확실시 된다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 만들어진 이 책들은 합리성이 결여된 국사역사학의 틀을 크게 과장하고 왜곡한 "위서(僞書)"라는게죠. 이들 위서는 그 자체보다는 '신단민사'나 '신단실기'와 같이 제대로 서술된 역사책까지 싸잡아져서 비과학적이고 근거없는 사이비 역사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데 그 문제가 더욱 크답니다.
책에는 학자별로 주장하는 고조선의 세력권을 보여 주는 지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들을 보면 식민사학자들의 '소고조선론'과는 그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프랑스 신부가 얘기하는 세력권이 '대고조선론'에서 말하는 그것과 좀 더 유사해 보입니다. 책에는 그러한 연유에 대해 나름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레지신부가 참고로 한 중국의 고서들과 '대고조선론'을 주장하는 19세기말 조선의 유학자, 양반관료들의 인지하고 있는 상고사의 내용이 그 당시 한국과 중국의 식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를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견 설득력있는 주장이라 여겨집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학계는 이병도란 학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나 봅니다. 책에 그러한 현상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해제자들에 대한 질문 및 답변>에서 15번째 질문과 답변으로 수록되어 있는데요. "선생님은 현 한국고대사학계에 '식민사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으로 이에 대한 답변은 그 유풍은 남아있다라고 합니다. 한데 애매모호하게 애둘러서 표현하고 있는데다가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분들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식민사학적 경향이 많이 보이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요. 여튼, 제 보기엔 그 학자들에게서 시작된 식민사학적 경향으로 역사를 보는 시각들이 한국 사학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 참여 등 친일행적을 보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지만 식민사학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는 것 같네요. 해제자는 이병도란 학자가 노골적으로 친일행위를 하지는 않았고 일제 강점기에 학문을 배웠다는 학문적 배경의 한계와 '삼국사기'를 번역하는 등 학자로서 상당한 노력을 했었기에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파악하기 보다는 어떠한 주장과 견해들이 있고 그와 관련해서 어떠한 사료들이 있다 정도를 파악하는데 의의가 있는 도서라고 여겨집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전해지는 자료도 드문 먼 옛 상고시대에 대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학설들이기에 어느게 진실일런지는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을거라 생각됩니다. 혹 새로운 유적이나 사료들이 발견되어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면 모를까 그 이전까지는 논란이 계속 이어질 거라 예상되구요.. 고조선과 고구려에 대해 18세기 서양인들이 파악한 내용들에 궁금하시다면 이 책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