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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김광한 지음 / 북레시피 / 2018년 6월
평점 :
[도서후기]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 우리 시대 최고의 DJ 김광한,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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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김광한
펴낸곳 : 북레시피
발행일 : 2018년 6월 29일 초판1쇄
도서가 : 16,000원
지구상 팝음악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요? 얼마전 입수한 책 한권을 읽다가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궁금하면 인터넷을 통해 찾아봐야죠.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Pop Song'은 '대중에게 어필한 음악의 한 부류라는 의미로 1926년경 최초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팝음악이 시작된 시기는 19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로 보는 견해와 미국의 1920년대를 그 시작점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로큰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1950년대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팝음악의 시작에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던데요. 이처럼 팝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 책은 다름 아닌 한국 DJ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故 김광한님의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이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미 고인이 된 DJ 김광한입니다. 처음엔 고인이 된 분이 어떻게 자서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의아했죠. 하지만 책 앞부분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광한의 아내 최경순이 먼지 덮힌 남편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가 직접 기록한 회고록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답니다. 책에는 발견된 그 자필 원고와 그가 가보길 소원했던 리버풀의 매튜 스트리트 곳곳에서 그의 유골을 뿌리는 모습, 그가 어려서부터 성년이 되어 왕성하게 활동하던 모습까지 많은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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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서문. 남편은 여행 중>으로 시작하여 <Ⅰ. 낙원동의 잘 생긴 골목대장>, <Ⅱ.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터>, <Ⅲ. DJ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 <Ⅳ. 사랑과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 <Ⅴ. 나의 사랑, 나의 뮤직>의 본문부로 이어지고, 지인과 선후배들의 그를 추모하는 글 <부록. 우리 시대의 DJ 김광한을 기리다>로 글을 마쳐집니다. 마지막에는 <화보. 김광한이 만난 사람들>과 <김광한 연보>가 수록되어 있구요.
故 김광한 님은 1946년 해방되던 이듬해 서울 종로에서 출생하여 2015년 7월 6일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발병한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놀라웠던게 그가 30대에 이를 때까지 많은 고생을 하였다는 겁니다. 그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모습만 보았던지라 전혀 그랬었단 사실 몰랐던게죠. 게다가 부친과 친한 김두한과 앞뒤 집에 이웃해서 살아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와 비록 정훈병과이었지만 월남에 파병갔었던 군인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그는 어렸을 땐 잘생긴 아이였다고 합니다. 집안도 상당히 부자였는데다가 생김새나 학교 다니는 모양새가 귀공자 타입으로 보였을 것이라네요.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 쯤부터 엇나가는데 결석을 자주해서 성적도 나빠지고 학교도 멀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중3(1961) 때에는 부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고2때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모친이 돌아가셨답니다.
1965년 서라벌예술대학 방송과에 응시자 미달로 합격하여 입학합니다. 1학년이던 1965년 국내 최초의 FM방송이던 서울FM(FBS)의 방송부장 한용희의 추천으로 레코드플레이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FM 팝프로 아나운서가 예비군 훈련으로 자리를 비운는 바람에 대타로 기용되어 DJ로 데뷔하게 되었답니다. 비공인이긴 하지만 방송 DJ 제2호라네요. 1호는 동아방송의 최동욱이랍니다. 하지만 운영난으로 1966년 FBS가 삼성그룹으로 넘어가 TBC가 되는데 기존 직원들은 아무도 받아 들이질 않아 직원 모두 실직자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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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에는 군입대를 하여 25사단 정훈참모부에 배치받게 됩니다. 이듬해에 정훈병과로 월남 파병 지원하여 나트랑의 백마부대 사령부 본부중대의 정훈병으로 근무합니다. 이 기간중 부친이 돌아가시게 되구요. 그는 전투에 참여한 적은 없는 것 같고 열달 정도 지나서 귀국 신청을 해 1970년 제대를 합니다. 이후로 DJ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에 생계를 위해 간판가게, 실내사격장 사환, 하숙집 관리인, 신문배달, 관상가, 병아리 장사, 고물 장사 등 꽤 많은 직업을 전전하게 됩니다. 1976년에 잡지 '주간시민'의 방송 담당 기자로 취직해 2년간 다니기도 하고 다방 DJ도 하는 등 끊임없이 DJ로 진출하는 기회를 모색하다가 아내(최경순)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이후로 순탄한 길에 접어 들었다는군요.
그는 1978년 MBC FM '박원웅과 함께'의 게스트 팝해설가를 시작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됩니다. 1980년에는 TBC FM '탑튠쇼'의 DJ를 맡게 되고 1981년에는 KBS '2시의 다이얼'을 시작하여 7년간 방송하게 됩니다. 1983년에는 KBS 2FM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1993년까지 11년간 이어지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 됩니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오후 2시에 방송하는 양대 프로그램, KBS 2FM의 '김광한의 팝스다이얼'과 MBC FM의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알 것입니다. 둘다 상당히 장수했던 프로그램이었죠. 수업시간에 방송하는 관계로 많이 듣지 못했던 슬픈 현실이 기억나네요. 대신 KBS 2FM에서 새벽 1시에 방송하는 '전영혁의 25시의 데이트'를 많이 듣곤 했죠.~
책은 김광한님의 아내, 최경순씨가 지난해 여름 남편의 마포 지하 사무실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고인이 틈틈히 노트에 기록한 자필원고를 발견하게 되어 출간까지 이어졌답니다. 그가 성장해 온 과정을 담담하게 집필한 자서전 내용이기에 그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그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잘 알게 되었죠. 그가 방송을 처음 할 때와 마지막으로 틀었던 노래가 있는데 Miles Davis의 "Music"이란 곡이랍니다. 한번 찾아서 들어봐야겠네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던 김광한. 건강해 보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했다고 하죠. 이제부터라도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팝송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려주던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단 사실에 많은 팬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의 독특한 저음과 방송진행이 아직까지도 기억나네요. 이 책은 김광한을 추억하고픈 팝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 아닐까 생각합니다.~